2018년 5월 6일 일요일

<영향 아래 있는 여자> 우리 엄마와 아빠를 닮은 영화

(싸지방에서 처음 올리는 영화 리뷰.
22개의 리뷰를 서둘러 마무리해야겠다.
아니 서둘러 하면 안 되는 건가?
왜냐면 시간을 때우면서 영화 글을 어떻게 쓸지 계획을 하나둘 짜고 있으니까.)

동민이형이 내게 추천해준 영화이다.
내가 군대 가기 전에는 꼭 봐야 할 것 같아서 봤다.
내가 보면 졸도할 영화라고 했었다.
졸도는 안 했다.
하지만 꽤 몰입해서 보았다.
그렇지만 동민이형이 좋아했던 포인트와는 다른 이유였다.

'영향 아래' 있는 여자?
여기서 말하는 영향이란 뭘까?
무엇의 영향일까?
이 여자는 정신이 약간 이상한 사람으로 나온다.
그녀는 무엇의 영향을 받고 있는 걸까?
나는 가난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 전체를 가난이라는 영향 아래 놓고 보면 시시해진다.
이 여자가 가난해서 이렇게 됐고, 가난해서 치료도 못 했고, 남편이 돈 버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어서 이 여자가 계속 이렇다고.. 보면 시시해진다.

나는 영화에 나오는 여자와 그녀의 남편을 보며 우리 엄마 아빠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 엄마는 지금 정신이 조금 이상하시고 아빠 역시 영화 속의 남편처럼 다혈질이다.
그래서 남편이 여자에게 소리를 지르고 부부싸움을 하는 장면들이 대부분인 이 영화가 너무 특별하게 다가왔다.
부인하고 싶었다. 보기 싫은 광경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볼 수밖에 없었다. 너무 사실적이라 싸우는 엄마아빠를 볼 때처럼 정신이 쭈뼛 섰기 때문이다.

동민이형과 대화를 했다. 왜 이 영화를 좋게 봤고, 내가 좋아할 거라 생각했는지 물었다.
그 때 들은 답은, 카사베츠는 영화를 통해 어떤 마법같은 것을 부린다는 것이다.
영화를 만든 사람이 의도했을 거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는 어떤 결과물이 보인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도 동민이형이 말한 카사베츠의 특별함처럼, 카사베츠가 의도하지 않았을텐데 영화를 꽤 개인적으로 받아들이는 특이한 경험을 했다.


엔딩도 너무 이상했다. 현실을 닮아 너무 이상했다. 현실도 너무 이상하다.
죽일듯이 싸우더니 이내 잠잠해지고 서로를 사랑한다 말한다. 그렇게 앞으로도 비슷한 일들이 반복될 것만 같고, 이상하게 평화롭다.
우리 엄마 아빠도 가끔씩 싸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땐 아빠가 너무 쉽게 엄마에게 사랑한다 말한다.
나는 그 싸울 때와 사랑한다 말할 때의 온도 차이가 이해가 안 간다.
싸우고 나서 어떻게 사랑 모드로 돌아가는 걸까.
나는 아직 그걸 잘 모르겠다. 그래서 잘 안 싸우려 한다. 싸우고 나면 이전 상태로 돌아가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
군생활 계획 중 하나가 '잘 화 내는 법 배우기'이기도 하다.


낯선 영화였고, 아직도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좋아할 영화인가?
좀 더 생각해 봐야겠다. 존 카사베츠의 <남편들>도 괜찮다고 들었는데 언젠가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18년 3월 10일 토요일

<파편들> 크로넨버그의 섹스 좀비


추천받아서 본 데이빗 크로넨버그 초기작이다.
성욕이 강해지는 좀비 바이러스가 주 소재이다.

"합스는 인간이 생각이 너무 많다고 봤어. 육체와 본능은 무시되고 이성만 발달됐다고 믿었는데, 쉽게 말해 머리는 좋은데 용기가 없는 거야. 최음제와 성병으로 만든 기생충을 이식하면 인간이 용기를 되찾을 거라고 홉스는 생각했어. 세상을 난교의 장으로 만들려고 한 것 같아."

피부 안에서 무언가 숨을 쉬는 크로넨버그 특유의 기법을 이 영화에서도 찾을 수 있다.

좋았던 장면..
평범한 가족이 아파트에 입주하는 장면과, 그 아파트에서 살인이 일어나는 장면을 교차해서 보여주는 오프닝.
그리고 섹스 좀비들이 차를 타고 웃는 얼굴로 어디론가 향하는 의미심장한 엔딩. They came from within..
하지만 내용 구성이 재미가 없고, 소재 안에 담긴 메시지도 아직 부족하다.
그래도 크로넨버그의 에너지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성을 다룬 그의 작품들을 더 탐구해보고 싶다.

<코렐라인: 비밀의 문> 천국은 없어도



활동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동아리에서 함께 이야기나눈 영화.
영화가 어렵지 않은 것은 좋았으나, 할 이야기가 너무 없었다.

좋았던 것은 자신을 부르는 딸에게 귀찮음을 표현하는 어머니.
이렇게 자식에게 싫증을 내는 어머니는 애니메이션에서 처음 본 것 같다.
그리고 모든 것이 완벽한 세상은 없다는 현실적인 관점.


<프란츠> 프랑수아 오종의 절제



프랑수아 오종의 <두 개의 사랑>을 보고 바로 연달아 본 작품.
전쟁을 다루는 외국영화를 잘 안 보는 편인데, <이다>라는 영화를 어쩌다 만나 좋게 봐서 이번 영화도 그러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피곤해서 살짝 잠들어 앞부분을 놓치고 말았다.
이해가 안 가는 내용은 아니었지만 몰입이 안 된 상태로 영화를 보았다.


전쟁 중 죽은 사람, 죽인 사람 모두 피해자에 불과하다는 시각..
해방 이후 어느 일본인이 찾아와 사과한다면? 하고 상상해 보기도 했다.

진실이 괴로움, 분노, 증오만을 낳게 될 상황에서 혼자 감내하는 자..
반대로 자기 혼자 떳떳해지기 위해 남들에게 진실을 강요하는 자(아드리앵)

안나가 아드리앵에게 연정을 품은 데에는 설득력이 부족했다.


찾아보니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죽인 자를 마음으로 보듬게 된다는 스토리는 1932년 <내가 죽인 남자>에서부터 왔다고 한다.
<래빗 홀>이라는 영화에서도 본 스토리같은데 참 슬프고 안타깝다.


프랑수아 오종을 좋아하는 건 야한 영화를 잘 만들어서이다.
아직 이 영화까지도 품을 수 있을 정도로 오종의 깊은 팬은 아니었다.

2018년 2월 20일 화요일

2017년 영화 결산

(진한 제목은 좋게 본 것, 기울어진 제목은 재감상한 것)

스트레이트 스토리
트레인스포팅
블루 벨벳
아메리칸 스나이퍼
케이 팩스
하하하
스타쉽 트루퍼스
와이키키 브라더스
더 킹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단지 세상의 끝
은하해방전선
나쁜 피
퍼스널 소퍼
컨택트
키즈 리턴
포스 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
도약선생
노킹 온 헤븐스 도어
싱글라이더
레볼루셔너리 로드
아비정전
에브리바디 원츠 썸
김씨 표류기
해피 투게더
멀홀랜드 드라이브
걸어도 걸어도
캐쉬백
케빈에 대하여
밤의 해변에서 혼자
시네도키 뉴욕
퍼펙트 블루
인스턴트 늪
욕망의 모호한 대상
맨하탄 살인사건
피라냐 3DD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황금시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2
안녕 용문객잔
레지던트 이블
올리브 나무 사이로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아이 엠 어 히어로
우리들
플래닛 테러
피의 피에로
원초적 본능
제 7의 봉인
돈 존
연애담
몬스터
리얼
옥자
맵 투 더 스타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
인히어런트 바이스
범죄의 재구성
그 후
터스크
개를 문 사나이
더 비지트
페스티발
에드 우드
미트볼 머신
제인 도
데이브 미로 만들다
미르싼
싱크로나이자
내일부터 우리는
다크 나이트
커피 느와르: 블랙 브라운
어둔 밤
벗어날 수 없는
빌로우 허 마우스
마터스: 천국을 보는 눈
이레셔널 맨
내 책상 위의 천사
벨벳 골드마인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
고양이를 부탁해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잃어버린 지평선
아내는 고백한다
세르비안 필름
개그맨
혹성 탈출: 종의 전쟁
두뇌 혁명 A.I.
레이건 쇼
데이빗 린치 아트 라이프
네온 데몬
마더
더 플라이
무서운 집
휴먼 센티피드
스크림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춘몽
러브 미 이프 유 데어
잭앤질
애정만세
밤과 안개
셜록 2세
지옥이 뭐가 나빠?
베이비 드라이버
아노말리사
사돈의 팔촌
비밀은 없다
라쇼몽
1408
소름
싱 스트리트
매기스 플랜
가족의 탄생
샤이닝
미스테리어스 스킨
남자사용설명서
에너미
화양연화
네이키드 런치
엑시스텐즈
돌아온다
벌거숭이
용의 국물
러빙 빈센트
어댑테이션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토이 스토리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
패터슨
퐁네프의 연인들
더 퍼지
로크
내가 사는 피부


약 140편의 영화를 본 해였다.
재감상한 영화는 30편 정도 된다.
좋게 기억하는 영화는 43편이나! 된다.
작년에는 타율이 10% 정도였는데 이제는 30%정도로 매우 높아졌다.
좋은 영화를 보는 눈이 생긴 건지, 아니면 보통의 영화에도 쉽게 만족하는 건지..
보통의 영화에도 쉽게 만족하게 된 것이라면 그것을 기뻐해야 할지...

재감상한 좋게 본 영화는 14편!
처음 보는 영화보다 예전에 봤던 영화를 더 좋게 본 비율이 더 높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예전에 봤던 영화를 다시 한 번 본다는 건 그만큼 좋기 때문이다.
반대로 좋게 기억하던 30편 중 절반 정도를 잃어버린 것은 매우 안타깝다.

지난해에는 똑같은 영화를 한 해에 두 번 보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버렸다.
그러고나니 편해졌다.
앞으로 같은 영화를 짧은 텀을 두고 여러 번 보는 일도 자주 있을 것이고
같은 배우나 같은 감독의 영화를 연달아서 보는 일도 있을 것이다.
내가 다음으로 깨고 싶은 원칙은 보는 영화에 모두 리뷰를 적지 않고 쓰고 싶은 글만 쓰는 것.
원래 내가 리뷰쓰기를 시작한 것은 해당 영화에 대한 감상이 어땠는지 나중에 기억이 안 날 때 찾아보는 용이었다.
물론 찾아보는 일은 거의 없었고 글을 쓰면서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생각들을 하는 것이 장점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글을 쓰면서 거의 새로운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냥 의무감만 생겨서 새로운 영화를 보는 데에 걸림돌이 되고, 항상 10~20편의 리뷰가 밀려있으니 부담감만 많다.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 점점 영화에 흥미가 떨어졌는지
본지 얼마 안 된 영화조차도 이제는 잘 기억이 안 나고 그런다.
리뷰도 점점 짧아지고 생각 많이 해야 되는 영화도 안 좋아하게 됐다.
예전에 열심히 4부로 나눠가며 2013년 한 해동안 봤던 영화들에 대해 리뷰를 썼던 것을 보니, 그 때는 진짜 내가 영화에 미쳐있었구나 싶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기억하는 좋은 영화들도 대부분 그 때쯤에 보았다.
요즘 영화를 보면 마음에 깊게 못 들어온다.
그 때는 할 생각이 영화 생각밖에 없어서였던 것 같다..
영화 한 편을 보고도 깊게 감동받아 장문의 리뷰를 올렸던 그 때가 그립다.


얼마 전에 클지선이라는 블로거 분께서 2017년 최고의 영화 조사를 하셔서 나도 재미로 2017년 개봉작 탑 10 리스트를 뽑아 보았다.

1.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
2. 밤의 해변에서 혼자
3. 제인 도
4. 컨택트
5. 빌로우 허
6. 리얼
7. 퍼스널 쇼퍼
8. 혹성탈출: 종의 전쟁
9. 옥자
10. 매기스 플랜

리스트에서 제인 도는 좀 더 아래로 내려도 될 것 같지만.. 수정하기 귀찮아서 그대로 올려본다. 지금은 아니어도 얼마 전에는 내 2017년 개봉작 베스트가 이랬다.
8,9,10위는 정말 마음에 안 드는데도 불구하고 억지로 10편 채우려고 넣었다.
작년엔 극장에 정말 안 갔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작품들도 거의 안 보고 그랬다.
얼마 전에 <신과 함께>를 보니까 인정하기 싫어도 재밌긴 재밌더라.
앞으로 이왕이면 같은 값으로 있어보이는 영화 보러 가지 말고 재밌는 상업영화도 좀 많이 봐야겠다.


그리고 정리하는 김에 친구들 보여주려고 2017년에 만난 영화 탑 10도 만들었었다.

1. 미르싼
2. 아이 엠 어 히어로
3. 트레인스포팅
4. 해피 투게더
5. 소름
6. 마더
7. 비밀은 없다
8. 어둔 밤
9. 더 플라이
10. 춘몽

어둔 밤과 더 플라이가 좀 더 올라가야 할 것 같지만.. 이것 역시 수정하기 귀찮으니 써놨던 대로 그대로 올린다.
2016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좋게 본 영화들 중에 장르영화가 많다.
미르싼, 아이 엠 어 히어로, 소름, 마더, 비밀은 없다, 더 플라이. 절반이 넘는 영화들이 공포 계열의 피 나는 스릴러 쪽이다.
영화 많이 안 보던 때의 취향으로 다시 돌아가고 있는 걸까?
앞으로도 장르영화를 좀 더 거리낌없이 선택하고 즐기도록 해야겠다.
이상!

2017년 12월 이용철 평론가 GV in 아트나인 <퐁네프의 연인들> 손에 넣고 보니 잃어버렸음을 알았다




<퐁네프의 연인들>을 처음 봤을 때 충격이 매우 컸다.
이번에도 그러리라 기대하고 영화 좋아하는 친한 형과 함께 보러 갔는데 좀 실망스러웠다.
아무리 노력해도 예전에 봤을 때만큼의 특이한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거기다 이용철 평론가가 해주는 얘기는 레오 카락스라는 사람을 더 평범하게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레오 카락스의 영화들에서 항상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했는데 너무 맞는 말이라 더 이상 감상할 여지를 잃어버렸다.
'레오 카락스는 사랑을 믿지 않는다'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될 영화들이면 그걸 왜 보나..
물론 나는 이용철 평론가 정말 좋아한다.
요즘은 영화에 대한 생각도 예전만큼 깊이 안 하고 어렴풋한 한 순간의 느낌이란 것에 많이 의존해서, 그것이 분명해지니 흥미가 떨어진 것뿐이다.

한때는 레오 카락스 감독을 정말 좋아했는데 요즘은 생각도 잘 안 난다.
다시 우울함이 극에 달할 때쯤이면 요즘 안 보는 영화들도 많이 보겠지.

영화에 나온 퐁네프 다리는 드니 라방의 부상으로 인해 촬영이 연기되어 실제 다리 대신 지은 세트라고 한다. 진짜로 제작비 어마어마하게 써버렸네..

예전에 봤을 때 가장 좋았던 장면은 다리에서 미친듯이 춤추는 장면!
이번에도 좋았지만 더 좋았던 건 수상스키 타는 장면이다.
불안정한 사랑의 극단을 보여준 떨리는 장면이었다!

<내가 사는 피부> 뭔진 몰라도 겁나 재밌다..



느낌이 너무나도 생경한 영화이다.
제목은 '내가 사는 피부'. 원제도 'The skin i live in'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봤더니 영화가 전개되면서 밝혀지는 진실들이 너무나도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재미가 있다.
결말의 아쉬움이나 상징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건 재미가 있어서이다.

페드로 알모도바르는 뛰어난 이야기꾼인 것 같다.
나중에 그의 다른 영화들을 선택할 때에는 주저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만약 <내가 사는 피부>를 다시 볼 때면 모든 비밀을 알고 보는 것이니 배우들의 연기를 유심히 지켜볼 것이다.

<페리스의 해방> 땡땡이 고수는 오늘..



[생각 없이 살기]라는 책에서 땡땡이의 의미를 알려주며 언급한 영화이다.
해방되는 것이 주 내용이라니 신기해서 보았다.
영화는 30년 넘은 영화치고 그리 오래된 것 같지 않은 느낌이었다.
음악도 잘 썼고 은근 통통 튀는 매력이 있다.

아쉬웠던 것은 페리스 뷸러의 땡땡이가 지나치게 운에 의존한다는 것과, 코미디가 너무 옛날식 몸개그라는 것이다.
딱 '나홀로 집에'같다고 생각했는데 감독이 실제 나홀로 집에 시리즈 각본가였다.
영화는 운 좋은 페리스 뷸러와 친구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를 잡으려는 학생 주임 선생님의 이야기가 교차되는 식이다.
페리스 뷸러의 정신에 대해 그리 진지하게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일탈의 기분을 느끼기만 하면 충분한 거니까. 영화 보고 나도 비슷하게 일탈 한 번 해 보거나, 아니면 답답했던 것을 깨 부수면 그것으로 영화는 할 일 이상의 것을 해낸 것이다.
하지만 학생 주임 선생님의 원맨쇼가 너무 재미 없었다. 페리스를 잡기 위해 페리스의 집에 가서 진흙탕에 빠지고 맹견과 싸우고 페리스의 누나 발에 맞아 넘어지는 식의 개그는 한물이 가도 지나치게 가버려서 안 웃기다.

페리스 뷸러는 영화로 보기에 딱 적당한 일탈을 보여준다.
좀 지루해지나 싶었는데 갑자기 페리스가 퍼레이드 행렬에서 마이크를 쥐더니 비틀즈의 'Twist and Shout'를 립싱크한다. 그리고 도시 한복판이 춤판이 되어버린다.
노래도 정말 좋고 페리스가 춤도 정말 잘 추고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다들 도시가 떠나가라 흥겹게 몸을 흔드는 것이 기분이 좋았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보고싶어졌다.

주인공이 관객에게 말을 거는 건 정말 좋다.
<나를 책임져, 알피>라는 영화도 이 영화처럼 주인공이 관객에게 말을 걸었다.
그 영화의 원작인 <알피>도 보고싶다..

<라스베가스의 공포와 혐오> ~휘청휘청~



술 취해서 보기 좋은 영화이다.
영화 내내 카메라가 이상한 각도로 흔들흔들거리고 주인공들이 약에 안 취해 있는 때가 없다.
이해가 되는 내용은 하나도 없는데 영화 자체의 기교에 흠뻑 빠져서 웃으며 재밌게 보았다.
배우가 몸 못 가는 것처럼 헤롱헤롱거리고 카메라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꽤 큰 연출 효과를 노릴 수 있다는 걸 이 영화를 보며 제대로 알았다.
뒷부분 가면 <클로버필드> 보고도 안 어지러웠던 내가 어지러울 정도인데, 나중에 극장에서 상영한다면 꼭 봐야 할 것 같다.

조니 뎁도 영화에 너무 잘 맞았다.
영화에 정말이지 딱 맞는 과장된 연기였다.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도 한번 봐보고 싶을 정도였다.

어떻게 사람들이 저렇게 영화 내내 취해있지 싶었다.
내가 영화를 보는 사람이 아닌 영화 촬영 현장에 있는 사람이었다면 매 컷 찍을 때마다 재밌었을 것 같았다.
흔들흔들거리다가 컷 외치면 멀쩡해지는 것이 상상이 가서 웃기다.
진짜 별것 없는 영화가 어떻게 2시간 동안 텐션을 이렇게 잘 유지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다.

<나의 연기 워크샵> 우울한 친구 얘기를 들어주는 기분



<초행>을 봐야 했으나 미루고 미루다 종영해버렸다.
인디스페이스에서 하는 영화 중 그나마 재밌어 보이는 것이 <나의 연기 워크샵>이었다.
줄거리도 대충 읽고 그냥 연기를 배우는 사람들이 나오겠거니 하고 보러 갔다.

극장엔 나 혼자밖에 없었다.
영화는 초반에 연기를 배우는 학생들을 보여주다가 두 사람의 감정이 묻어나는 장면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것도 수업의 일부였음이 밝혀진다.
또 연기 수업 장면이 나오고, 또 다른 두 사람의 감정이 묻어나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번에도 그것이 수업의 일부였다.
딱 그때까지만 재미있었다.
영화가 내게 게임을 걸어오나보다 하고 집중했지만 '현의 일기'라는 것이 나오면서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를 지경으로 영화는 흘러갔다.
읊어주는 사람은 네 명이지만 각본은 그 예민하고 감수성 짙은 사람 한 명이 쓴 것처럼 다채롭지 못 했다.
내내 우울한 얘기만 나와서 마치 우울증 걸린 친구의 슬프디 슬픈 과거 얘기를 2시간씩이나 들어주는 것 같았다.

내가 이 영화와 맞지 않았던 이유를 정리해 보자면
1. 영화가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2. 우울한데 설득이 안 된다.

간만에 영화관에 가서 본 영화인데 안 맞아서 너무 안타깝다.
집에 와서 보니 안선경 감독이 <파스카>를 찍었던 사람이었고, 그 영화의 주인공들도 이번 영화에 출연했다.
<파스카>를 안 좋게 봤었기 때문에 그걸 알았더라면 보지 않았을 것이다.
앞으로는 아무 정보 없이 영화 보러 가도 그 감독이 무슨 사람인지는 잘 챙겨봐야겠다.

2018년 2월 17일 토요일

<정화: 사이언톨로지와 신앙의 감옥> 위험을 무릅쓴 증언



사이언톨로지에서 탈출한 사람들의 증언을 담은 다큐멘터리.
인터뷰에 응한 이들이 대부분 인생의 긴 시간을 사이언톨로지에 바쳤던 사람들이라 꽤 충격적인 이야기를 많이 볼 수 있다.
나는 이 다큐멘터리가 반대 세력의 위협을 무릅쓰고 만들어진 용기있는 작품이라 좋았다.
제작진들이 걱정이 될 정도이다.

<비트코인 - 암호 화폐에 베팅하라> 2016년에 만들어진 비트코인 다큐멘터리



비트코인의 기원과 초기 발전과정을 알고싶다면 보기 좋은 다큐멘터리이다.
우리나라를 휩쓴 코인 투기 현상과는 별 관련이 없다.
이 다큐를 좀 더 일찍 봤더라면 비트코인에 일찍 투자할 수 있었을텐데.
다큐멘터리 제작진들은 엄청 많이 벌었겠지?

아쉽게도 다큐멘터리 자체는 졸면서 보았다.
블록체인 자체는 혁신적인 기술이지만, 상용화되기는 어렵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런 건 다큐를 안 봐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프로그래밍에 관심이 많지 않아서 알아듣기 어려운 부분도 많았다.

2018년 2월 16일 금요일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 길다.. 너무...



마음먹고 반지의 제왕 1편을 봤는데 너무 힘들다.
그래서 세시간 정도 보고 껐다.
안 봐도 뒷부분에서 내가 어떤 감정을 느낄지 잘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반지의 제왕이라는 명성에 공감할 기회는 앞으로 평생 없을 것이다.

2000년대 초반에 만들어진 영화답지 않게 기술력은 정말 좋다.
하지만 이런 재미없는 영화를 10시간 넘게 지켜볼 마음은 없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쓸쓸한 기주봉



기주봉 배우가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는 어떨지 궁금했다.
마침 교내 영화관에 가자는 친구가 있어 이 영화를 보러 데려갔다.
두꺼비를 연상케 하는 그의 몸이 잘 부각되진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영화를 열심히 보았지만 중간에 잠들기도 했고 집중력이 흐트러지기도 했다.
그래서 이해가 안 가는 부분도 좀 많다.
쓸쓸하고 황량한 느릿느릿한 분위기만은 잘 기억이 난다.
왜 만들었는지 전혀 모르겠을 정도로 영화 너머로 보이는 감독의 정서가 내 정서와 많이 달랐다.

<로크>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정정당당히 책임지는 사람




가장 멋있었던 건 자기 앞의 꼬여있는 문제들을 피하지 않고 정면돌파하려는 의지이다.
과거에는 실수가 있었을지 몰라도 지금 포기하지 않고 모든 잘못을 인정한 뒤 자신의 책임을 오롯이 다하려는 모습이 정말 멋있다.
나는 그런 게 잘 안 된다.
내가 감당하기 어려워 보이는 상황이 오면 사람들과 연락을 끊고 침대에 누워 초조한 기분으로 유투브를 보는 것이 요즘의 대처방법이다.
내가 못 하는 걸 해내는 로크같은 인물이 진짜 영화에서 봐야 주목해야 할 히어로가 아닌가 싶다.

영화는 진짜로 84분 동안 차 안에서만 진행된다.
하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다. 시나리오 정말 잘 썼다.
리뷰하기 위해 영화를 다시 쭉 훑어보는데 시각적으로 거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이 영화를 어떻게 이렇게 재밌게 봤나 싶다.
관객을 들었다 놨다 하는 솜씨를 반이라도 따라가고 싶다.

<어댑테이션> 각색이 힘들어 각색하는 자신을 주인공으로 삼다



영화를 하려면 좋은 시나리오를 써서 주목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하지만 나는 실천은 안 하고 생각만 한다. 시나리오로 진지하고 어려운 고민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내가 뭐라도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졌는지 <어댑테이션> 생각이 났다. 시나리오 때문에 괴로워하는 작가가 주인공인 영화 하나가 있다.

 포스터의 문구. 나는 이 영화를 예전에 본 적이 있다. 한국 포스터에 적힌 하나의 사건, 두개의 상상, 세가지 결말이라는 문구의 의미가 궁금해서였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이 문구가 이해가 가지 않았고 지금도 이해가 안 간다. 아마 포스터 만드는 사람이 그럴듯한 말을 만들어서 그냥 박아넣은 것 같다.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말자.

 난초 도둑. 정말 시나리오 특이하게 썼다 싶은 영화로 나는 이 영화를 고른다. 시나리오 작가 찰리 카프먼이 실제로 책 [난초 도둑]을 각색하는 과정에서 하도 일이 안 풀리니 책을 각색하는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해보면 어떨까 해서 이런 시나리오가 나왔다고 한다. 그동안 소설을 원작으로 한 어떤 영화에도 그 소설을 영화로 각색하는 작가의 캐릭터가 나온 적은 없었다. 여기서는 각색 작가인 찰리 카프먼이 자기를 주인공으로 만들고, 원작을 거하게 망쳐버린다.

 로버트 맥기.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찰리 카프먼이 선보이는 두 가지의 시나리오 작법이다. 전반부의 찰리는 자신만의 예술을 고수하면서 헐리우드식 영화 작법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러다 그가 시나리오 전문가 로버트 맥기를 만나면서 이야기는 화법 자체가 뒤집혀 버린다. 갈등도 없고 대화체도 별로 없는 밋밋한 원작처럼 밋밋하던 영화는 난데없이 장르영화로 둔갑해 버린다. 그간 해오던 원작 이야기와는 너무 딴판이다. 개연성도 상당히 떨어진다. 그런데 장면 자체를 상업영화처럼 잘 찍어놔서 재미는 있다. 하지만 의미가 없다. ‘[난초 도둑]이라는 책에는 이러저러한 충격적인 비밀이 있었다.. 그리고 형제는 너무 뜬금없이 사랑에 대한 명대사를 내뱉고, 이해가 안 되는 희망적인 결말로 끝이 나 버린다.’ ??? 생각을 해 보면 내용이 도무지 납득이 안 갈 것이다. 그렇다. 이 시나리오는 관습적인 공장형 영화들에 대한 돌려까기이다.


 겉과 속이 다른 시나리오.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독특하다고 여긴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자기 의지와 반하는 헐리우드식 전개를 한시간씩이나 하는데, 그걸 좋다고 쓴 게 아니라 까기 위해서 썼다. 어떻게 영화 뒷부분을 망쳐버리면서 동시에 이렇게 창의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상업영화를 까기 위해 상업영화적 화법을 택하다니. 정말 신기한 발상이다

2018년 2월 11일 일요일

<개그맨> 의도했을까 의도하지 않았을까, 알 수 없어서 매력적인



이종세의 얼굴을 보고 누구나 소리내어 웃는다.
하지만 웃는 사람들이 연기를 너무 못 해서 억지로 웃는 것 같다.
이종세가 정말로 웃긴 사람이었으면 그냥 연기력이 떨어지는 보조출연자를 썼구나, 하고 넘어갔을텐데 내가 보기에도 이종세는 정말로 안 웃긴 사람이었다.

<개그맨>에 대해서도 영화잡지에 글을 기고하려는데, 글이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1. 관객이 보이지 않는 수지 큐 댄스 장면.
이상하게 공허한 모터 돌아가는 소리, 어둠이 강조되는 스포트라이트 조명.
관객의 웃음소리가 정확한 타이밍에 나오지 않는다.
관객석은 한 번도 비춰주지 않는다.
관객들을 부를 제작비가 부족했던 걸까?
오프닝에서는 관객들이 나왔다. 찍으려 했다면 한번에 관객들 리액션 장면도 딸 수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돈도 있었고 관객의 얼굴도 넣으려 했으나 실수로 못 넣은 것일 수도 있겠다.

이 씬의 매력은 세 명의 인물이 Suzie Q를 공연하는 장면에서 나온다.
황신혜가 가운데에 서고, 안성기와 배창호가 양 옆에 서서 요상한 춤을 춘다.
양손을 배 양쪽에다 가볍게 주먹쥐고 몸을 꿀렁인다.
배창호의 배가 유난히 눈에 띄고, 합이 참 안 맞는다.
자세히 보면 배창호는 계속해서 안성기 쪽을 보며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배창호 캐릭터가 실제로 어수룩한 사람이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진짜로 배창호가 춤을 못 춰서일까?
아무튼 황신혜는 노래를 못 부른다.
안성기와 배창호는 연이어 무대 양 옆을 박자에 맞춰 왕복해 뛰어다닌다.
이걸 보면 안성기와 배창호가 거울 딸린 연습실에서 넉넉하지 못한 시간동안 연습했을 것이 상상이 된다.
카메라는 세 인물의 뒷모습을 로우앵글을 잡아 어떻게든 관객석을 보여주지 않으려 한다. 이건 분명하다.
그리고 노래가 끝날 때쯤에는 안성기와 배창호가 배 앞에서 주먹을 쥐고 바퀴처럼 굴린다.

노래를 못 부르는 황신혜, 춤 못 추는 배창호, 열심히 하는 안성기.


2. "얼마 전에 해외 토픽을 보니까요, 불란서 파리에서 어느 조종사가 경비행기를 몰고 그냥 관제탑을 들이받겠다고 그러더래요. 그 이유를 물으니까, 뭐? 일신상의 문제 때문에 그랬다나요? 참.. 세상엔 별 놈 다 많죠?"
나는 여기서 '일신상의 문제'라는 표현을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았다. ~이러이러한 표현이라고 한다.
그런데 왜 이런 대사를 여기에 배치해 놓았을까.
오프닝에서 문도석이 하던 의미없는 말들과는 전혀 다르게 들린다.
이걸 상징적인 대사로 처리하려 해도 아귀가 들어맞지 않는다.
일신상의 사유라.. 나름의 이유가 있긴 한데 그걸 말하기 애매한 상황일 때 쓴다는 것이 재미있었다.
새로운 말을 배웠다. 하지만 쓸 곳이 없었다.
그러다가 나가고 싶은 톡방에서 '일신상의 이유로 톡방을 나갑니다'라고 쓰고 나갔다.
꿈이든 뭐든, 엔딩은 황량한 느낌이다.

3. 이종세는 누구인가. 개그맨? 지금의 개그맨이라는 용어와는 너무 다른 느낌. 밤무대 MC.
단순한 밤무대 MC라고 보기엔 너무 이상하다. 옷 입고 다니는 것이 특히나. 그는 정신이 좀 이상해 보인다.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문도석 쪽의 심정이 더 쉽다.
영화감독? 그가 썼다던 시나리오는 무슨 내용일까? 잠깐 얘기해주는 장면에서는 액션영화 시나리오로 보인다. 그런데 피 대신 케첩을 쓴다니...
꿈 바깥의 그도 개그맨으로 보인다. 그도 영화감독을 꿈꾸는 이종세일까?
그렇다면 영화감독을 꿈꾸는 이종세의 허무맹랑한 상상..
상상 속 그의 시나리오엔 내용이 없고, 영화감독이라는 타이틀만 주어져 있다.

4. 영화에서 받은 느낌 정리
황량하게 연출해서 황량했다.
웃기려 했으나 웃기지 않은 것은 맞는 것 같다.
영화를 만든다는 겉멋..

2018년 2월 10일 토요일

<스콧 필그림 vs 더 월드> 자기가 웃기단 걸 대놓고 드러내는 코미디는 오히려 안 웃겨



언제 한번 보고 싶었던 영화를 넷플릭스에서 만나면 바로 볼 수 있다.
안 봐도 됐을 영화를 보게 된다는 이유에서 그게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에드가 라이트는 <베이비 드라이버>로 처음 봤는데 스콧 필그림이 더 스타일리쉬하다.
원작인 만화를 그대로 영상화한 장면들이 많은데 그게 하나도 어색하지 않고 재미있다.
화면에 인물 설명이나 효과음 등이 그대로 만화처럼 활자로 뜨는 것이 특이하다.

보는 재미는 있었으나 내가 좋아할 만한 영화는 아니다.
스콧 필그림이 싸우는 적들이 시시해질 때쯤 영화과 액션을 극대화한 타이밍도 좋았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가 재미있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는 코미디는 안 좋아한다.


화려한 스타일 뒤에 숨어있는 건,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 수밖에 없는 이별이란 것의 성질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이별에 관해 무슨 말을 하는가 집중해 보았는데 스콧 필그림이 상처 줬던 여자가 너무나도 쉽게 스콧 필그림 커플을 응원해주는 결말에서 할 말을 잃었다.
에드가 라이트가 잘 만들었다는 영화 두 편을 안 좋게 봐서 앞으로 그의 작품을 볼 일은 없을 것 같다.
<황당한 새벽의 저주>마저도!

<클로버필드 10번지> 참신한 속편!



줄거리가 대체 클로버필드 시리즈와 무슨 관련이 있나 싶었던 <클로버필드 10번지>.
동아리에서 이 영화를 가지고 이야기나눌 시간이 있었는데 여행 일정과 겹쳐버려 아쉽게 포기해야 했다.
그러다 이번에 넷플릭스에서 <클로버필드 패러독스>를 공개해서 그걸 보기 위해 10번지를 보았다.

영화는 꽤 재미있었다.
103분의 러닝타임 대부분을 밀실 안에서의 진실 공방으로 채운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이 영화에서 더 매력적이었던 건 '클로버필드 시리즈'이기 때문이다.
<클로버필드>의 팬이었던 나는 <클로버필드 10번지>가 클로버필드 세계관으로 들어오는 순간 열광했다.
와, 대단하다..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속편으로 만들 생각을 하지?
정말로 클로버필드 시리즈 세계의 문이 열리려나 싶어서 자료를 더 찾아보았다.
하지만 알아보니 J.J. 에이브람스가 앞으로 클로버필드 시리즈를 제대로 시작할 일은 없을 것 같다.
J.J. 에이브람스가 어떤 식으로 작품들을 만들어왔는지 보니 앞으로도 떡밥이 무수한 작품들만 나올 것이 뻔하다.
그는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 자체를 즐기는 사람인 것 같다.
이번에는 재미있었지만 <클로버필드 패러독스>는 망작이라고 한다.
이 뻔뻔한 떡밥질에 질릴 때쯤이면 나는 다시 떨어져 나가겠지.. 저 사람은 늘 하던 일 그대로 하고..

<트레인스포팅> 갓레인갓포팅


<트레인스포팅>은 아무리 봐도 재밌는 영화이다.
이번에 영화잡지에 트레인스포팅에 대한 글을 쓰려고 지금까지 한 10번은 본 것 같다.
이전까지는 <은하해방전선>을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말했지만, 이제는 <트레인스포팅>을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말할 수 있다.
나는 나의 20대를 <트레인스포팅>과 함께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영화 정말 잘 만든 것도 있고, 공감이 많이 되는 것도 있다.

전개가 정말 자연스럽다. 물 흐르듯이 딱딱 맞춰 이야기가 흘러간다.
이 내용 다음엔 이 장면이! 그리고 이 장면이!
여러번 보면 볼수록 감탄하게 된다.

음악이 정말 잘 깔렸다.
좋은 음악이 없었으면 다시 볼 일이 없었을 정도!

영화 속의 진정한 적인 마약은 내 삶이 싸우는 적인 '게으름'과 닮아있었다.
그래서 공감을 느꼈다.
어디가 닮았냐면, 그만두고 싶어도 쉽사리 그만둘 수 없는 중독성이 있다.
그리고 내 몸과 정신은 그걸 원하고 있어서 썩 나쁘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진짜 기쁨이란 무엇인가? 꼭 마약이나 게으름이 아니어야 할까.
나의 게으름이 꼭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나친 게으름과 순간적인 판단 미스로 인해 내가 피해를 보는 일들이 많다.
나는 내 게으름은 그대로 가져가되 기본적인 것들을 잘 해내고 싶다..
물론 그게 어렵지만...


이 영화를 가지고 잡지에 글을 기고하려 했는데
막상 이야기를 하려니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정말 답답한 상황이다.
1. 이 영화 쩐다!
2. 내 20대와 관련짓는 이유

여기에 집중해서 다시 해봐야겠다!!!

<신과함께-죄와 벌> 신파에 대한 고민



신파에 대한 고민이 들어 보게 된 영화이다.
'신파란 꼭 나쁜 것인가?'하는 간단한 질문에 답하긴 너무나도 어렵다.
비슷한 고민으로 '설명적인 것이 나쁜 것인가?' 하는 질문이 있다.

아무튼 나는 <신과함께-죄와 벌>을 보며 눈물을 몇 번 흘렸다.
나는 내가 운 영화는 되게 좋게 기억한다.
물론 어머니를 말 못 하고 힘 없는 노인으로 설정한 뒤 그녀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장면이 대두되는 후반부는 별 감정 없이 보았지만 그 신파가 영화 전체를 해친다는 느낌은 없었다.
<부산행>에서 툭 튀어나온 신파가 내게는 큰 걸림돌로 보이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쟤들 저러는 거 한두번이냐~ 하는 느낌이다.
그 장면들에서 감동을 느끼는 관객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내가 영화를 만들게 된다고 할 때, 신파의 유무가 관객수를 좌지우지할 정도라면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싶다.
방법이 어찌됐든 어떤 한 사람의 눈물을 훔칠 수 있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일이다.
물론 신과함께든, 부산행이든, 7번방이든 눈물 흘리라는 신에서 별 감정은 못 느꼈다.
내 말은, 그게 꼭 나쁜지는 모르겠다는 것이다.
시네필이라면 이런 영화 누가 더 잘 까나 대결하기 바쁜 분위기가 답답하고 짜증이 나서 일부러 나대로 생각을 발전시켜 보고 싶다.

[그때 그 시절 패밀리] 시즌 1& 시즌 2. 70년대를 허우적이는 가족들



제목 촌스러운 '그때 그 시절 패밀리'.
줄거리 '아이들이 신나게 뛰놀고, 맥주를 자유롭게 마시며, 남자들이 아무 방해 없이 TV 시청을 즐기던 1970년대에 사는 머피 가족을 만나보자.'
캐릭터가 별로 호감이 안 가게 생겼지만 줄거리가 너무 분위기가 좋아보여서 손을 댄 애니메이션이다.

구조는 심슨 가족을 떠올리게 한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세 명의 아이. 애완동물. 옆집엔 짜증나는 이웃까지.
하지만 화법은 전혀 다르다.
어쩌면 유사점은 가족의 이야기를 하고 있고, 애니메이션이라는 데에만 있는지도 모른다.
기본적으로 매 시즌에서는 시간이 흘러가기 때문에 사건이 순서에 따라 진행되고 인물에게 치명적인 변화가 생기기도 한다.

아빠는 가부장제 아래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막대한 의무를 지녔지만 직장 문제로 고통스러운 일을 꽤 많이 겪는다. 그리고 매우 신경질적이다.
엄마 역시 꿈이 있었던 사람이지만 아이들이 생기면서 가족을 위한 삶을 살고 있다. 가장 좋았던 장면이 그녀가 플라스틱 용기 판매 일을 다 마치고 갑자기 펑펑 우는 장면이다. 조금 뜬금없기도 하지만, 그녀의 고민이 느껴져 좋았다. '나는 플라스틱 판매 일이나 하려고 어른이 된 게 아닌데..'
첫째는 부모한테 대들고 불량한 아이들과 어울려 놀지만 순진하고 속이 깊은 아이이다. 그가 어릴 때 물에 빠졌던 기억때문에 물 속에 들어가는 것을 무서워한다는 설정이 좋았다.
둘째는 남자답지 못한 연약한 소년이다. 학교에서는 불량학생에게 얻어맞고, 여동생과의 기싸움에서는 매번 진다. 못 볼 꼴을 보면 눈이 요상해진다.
셋째는 수학을 잘 하고 컴퓨터에 관심이 많지만 여자아이라는 이유로 교육받을 기회를 제공받지 못 하는 아이이다. 한편으로 오빠에게 대하는 것을 보면 좀 영악하다.

시즌 1을 보면 가족들이 내내 싸우기만 해서 무서울 정도이다.
미국의 70년대 가정들은 다 저랬나? 미국 사람들은 저렇게 화를 많이 내나?
그런데 어떻게 저렇게 자연스럽게 화해를 하는 거지?

시즌 2는 시즌 1의 결말 이후 또다른 재미있는 전개를 보여준다.
다음 시즌이 나온다면 꼭 보고싶다.
넷플릭스에서 본 최고의 컨텐츠였다!
각본을 정말 잘 써서 좋았다. 나도 저렇게 코미디 시리즈물 각본을 잘 쓰고 싶다.

[빌어먹을 세상따위] 자비에 돌란이 웹드라마를 찍었다면 / 초반부만 매력적임



1화를 본 느낌은 거의 혁명적이었다.
느릿느릿하면서 위트있는 화법이 정말 매력적이었다.
슬로우모션에 음악이 자주 쓰이고, 예쁘게 조작한 화면들이 많이 나와서 자비에 돌란의 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또 인물은 거의 항상 카메라의 중앙에 놓인다.
두 명이 대화할 때도 서로 마주보기보다는 멍하니 카메라를 보고 말하는 식이다.
게다가 사람을 죽여보고 싶어하는 사이코패스 소년과 그의 여자친구 이야기라니.
정말 기대가 됐었다.

하지만 소년은 생각보다 일찍 사람을 죽이는 데 성공하고, 자신이 사이코패스가 아니었단 걸 깨달으면서 이야기는 점점 재미가 없어진다.
여자친구를 언제 죽일까 망설이는 소년에서 항상 남에게 상처주는 행동만 하는 소녀로 주도권이 넘어가면서 이야기는 너무나도 평범해진다.
그래도 초반부의 신선함 때문에 끝까지 참고 보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로, 시즌 1까지 나와 있다.
엔딩은 정말 별로였다. 엔딩만 잘 만들었어도 내가 이 드라마를 좋아했을텐데.
엔딩은 해외 드라마 특유의 열린 결말이다. 매우 실망스러웠다.

2018년 2월 9일 금요일

<패터슨> 패터슨의 시점에 툭 치고 들어오는 정체불명의 숏들



나는 이 영화가 패터슨의 시점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패터슨이라는 도시에 사는 패터슨을 주인공으로 한, 제목도 패터슨이기까지 한 영화에서 패터슨씨는 시를 쓴다.
그는 일상 생활에서 본 사물을 소재로 시를 쓴다.
이렇게 <패터슨>은 그가 세상을 받아들이는 감각을 표현해낸다.

그런데 버스 드라이버인 그가 듣게 되는 승객들의 대화가 너무 이상한 방식으로 들어온다.
계속해서 패터슨 주위를 졸졸 따라다니며 섬세하게 패터슨과 그 주위를 포착해내던 카메라가 그 순간에는 갑자기 승객을 너무 각잡고 찍는다.
가끔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듣게 될 때가 있는데, 그 때면 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는 하지만 그 사람을 정면에서 똑바로 바라보지는 못 한다.
패터슨이 버스에서 승객들의 대화를 듣는 것도 그 경험과 비슷하게 사실적으로 찍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촬영이 어긋났다고 느끼지 않았더라도 내 기억에는 남지 않을 영화이다.
자칭 교양있는 사람들이 "가끔식은 이렇게 차분한 영화도 봐 줘야죠?" 하는 이상한 광경이 상상이 돼서 싫다.
좀 더 제대로 말하자면, 이 영화가 표방하는 '별 거 없음'이 영화를 볼 때는 재밌게 들리지만 막상 돌아서면 곰씹을 거리가 없다.
주위 사람들이 극찬했으나 영화 자체가 나랑 너무 안 맞는 영화였다. 앞으로 짐 자무쉬 영화를 볼 일도 별로 없을 것 같다.

2018년 2월 7일 수요일

<트윈스터즈> 재회, 쌍둥이, 입양아



SNS를 통해 어릴 때 따로 입양된 한국계 쌍둥이가 재회한다는 내용의 다큐멘터리이다.
초반부는 재미가 없었다.
주인공들에겐 이 이야기가 일생일대의 흥분되는 일일지라도 내게는 별 감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만 볼까도 생각했지만, 뒷부분으로 가면서 재미있어졌다.
초점이 둘이 쌍둥이라는 사실에서 입양아라는 사실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친어머니가 있는 나라인 한국의 입양아 커뮤니티에서 소속감을 얻는 장면은, 영화를 보고 있을 입양아들에게 '넌 혼자가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결말부까지도 내 주위 사람의 이야기를 보는 것처럼 사실성이 돋보였다.


<언더 더 스킨> 철저히 인간을 사냥하는 외계인의 시점에서



간만에 긴장하며 본 영화이다.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집중하며 보았다.
영상과 음악, 연기가 정말 좋은 작품이었다.

비유하자면 이 영화는 포식자가 먹잇감을 사냥하는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이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느끼는 감정이 영화 속 스칼렛 조한슨에겐 없다.
나와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을 영화는 그대로 따라간다.
생태 다큐멘터리에서 나와는 다른 동물들의 행동을 보던 것처럼 <언더 더 스킨>의 스칼렛 조한슨을 보게 된다.
이해할 수 있는 행동은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은 이해할 수 없다.
영화가 기괴해서 그런 다큐멘터리보다 더 쫄깃하게 보는 맛이 있다.
그리고 선뜻 이해가 안 가는 장면들도 다 생각해 보면 이유가 있다.

영화가 끝나고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인간을 사냥하다 스스로 인간이 되기로 마음먹었으나 그 인간으로부터 사냥당한 외계인의 이야기를..
악어가 너무 좋아서 악어 늪으로 가도 결국엔 악어가 되지 못한다 이 얘긴가?
결말이 내게 주는 의미는 아직 못 찾겠다.
의미가 별로 없어도 괜찮다. 어차피 의미 없는 영화들이 많으니까. 재밌었으면 됐다.

<아더라이프> 1분동안 1년을 경험하는 가상현실 프로그램



간만에 정통 SF 영화를 보았다.
어떤 경지에 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꽤 재밌게 보았다.
<사라진 기억>과 <엑시스텐즈>가 생각이 났다.
<사라진 기억>은 혼수상태에 놓인 한 사람을 깨어나게 하려는 주인공의 심리가 닮았고
<엑시스텐즈>는 가상현실과 현실이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이 닮았다.

가상현실 프로그램 '아더라이프'의 개발자인 주인공은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동생을 살리기 위해 비밀 연구를 진행한다.
그러나 샘플을 잘못 실행한 남자친구가 죽게 되어 주인공은 1년 가상 수감 프로그램에 갇히게 된다.
그런데 1년이 지나도 수감은 끝나지 않고, 감옥 바깥으로 향하는 출구를 찾은 그녀는 남자친구도 죽지 않았고 개발진의 음모로 회사에서 자신의 존재가 지워진 것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곧 가상현실에서 깨어나 1년의 수감 이후 경험한 것들이 모두 프로그램의 일부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남동생을 살리는 방법은 잘 이해가 안 갔지만 흥미진진하게 보았다.
현실세계에서의 1분이 가상현실세계의 1년이라서 주인공이 1년동안 수감하게 된다는 설정은 '5억년 버튼'이 생각나서 재밌었다.

연출상에서 훌륭했던 건 설명적인 대사를 많이 넣지 않고도 분위기와 주인공의 연기로 스토리텔링을 잘 해냈다는 점이다.
동생을 살리고 싶어하는 마음과 '남자친구가 죽은 세상에서 살아서 뭐하나..' 하는 감정이 매우 설득력 있었다.

<도쿄 아이돌스> 일본의 아이돌 세계를 구경하기





일본의 흥미로운 아이돌 문화를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아이돌 강국인 대한민국 사람이 보기에도 신기하게 볼 만한 내용들이 많다.
영화는 기이한 아이돌 문화를 이것저것 보여주면서 은근히 비판한다.

나는 저 문화를 비판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하게 놔뒀으면 한다.
다루고 있는 대상은 좋았지만 그것을 보는 관점이 마음에 들지 않아 아쉬웠던 작품이다.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다.

<로코> 이탈리아 포르노 스타 로코는 이제 그만 나이가 들어 은퇴하려 해




이탈리아 거물 포르노스타의 은퇴 시기를 취재한 다큐멘터리이다.
로코의 작품을 즐긴 사람이라면 추억에 잠겨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로코도, 이탈리아 포르노도 잘 모르지만 수위가 꽤 세서 보는 재미는 있었다.
이 다큐는 대부분 포르노를 찍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장면들로 이루어지고 중간중간 로코의 고민 가득한 인터뷰가 나오는 식이다.

얼마 전에 본 <핫 걸 원티드>라는 다큐의 배경인 마이애미보다는 이탈리아 포르노 배우들이 수명이 더 긴 것 같다.
그리고 핫 걸 원티드에서 본 것과 같은 자극적인 성행위가 여기는 주를 이룬다.
<로코>에서의 섹스는 죄다 가학과 피학이다.
서양의 포르노는 왜 죄다 여자들을 못살게 구는 걸까?
네 손가락을 입 안에 박아넣고 우걱우걱 소리를 내며 눈물을 흘리는 여자를 보면 있던 성욕이 다 사라진다.
저게 그 문화권의 일반적인 시청자들에게 잘 맞는 컨텐츠인가?
넷플릭스에 있는 성인물 산업 관련 다큐멘터리는 서양 쪽에 치우쳐 있어서
더 보는 것이 아무래도 내게 필요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2018년 2월 5일 월요일

<엑시스텐즈> 각본은 못 쓰지만 꽤 매력적인



데이빗 크로넨버그에 빠져서 예전에 아쉽게 봤던 <비디오드롬>의 속편 격이라는 <엑시스텐즈>를 보았다.
가상현실 게임 제작자와 경비원이 음모에 맞선다는 것이 줄거리이다.
크로넨버그 특유의 디자인이 매력적인 작품이다.
가상현실 게임기는 마치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처럼 피부와 혈액을 가졌고, 플레이어는 척추에 구멍을 뚫어 게임기와 직접 접촉한다.
금속 탐지기 단속을 뚫기 위해 뼈로 제작된 총이 등장하는 것도 흥미롭다.

하지만 영화 '게임'이라는 것의 만듦새가 너무 조악하다.
대체 목적이 무엇인지, 상황이 무엇인지 파악이 안 될 정도로 게임같지가 않다.
크로넨버그가 큰그림은 잘 그려도 대사를 통한 구체적인 상황 설명은 정말 못 하는 것 같다.
그래도 결말은 꽤 흥미롭다.
지금까지의 모든 이야기가 결국 게임 속의 이야기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그 게임 바깥에서의 인물들은 게임 속에서 벌어질 법한 상황을 연출한다.
총을 겨눈 주인공들에게 한 남자가 이렇게 말한다.
"이봐, 내게 진실을 말해줘. 우리 아직도 게임 속에 있는 거야?"

영화는 가상현실이 너무나도 현실같아져 버렸을 때 우리의 인지능력이 그것을 구분하지 못 할 거라는 두려움을 핵심으로 삼는다.
이는 비디오와 TV에 대해 경고하던 고리타분한 옛날 영화들과 동일한 패턴이지만, VR 기술이 상용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꽤 흥미롭게 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은하해방전선> GV in 인디스페이스. 2017년 11월. 10년 뒤의 윤성호



개봉한지 딱 10년만에 인디스페이스에서 은하해방전선을 틀어주고 GV를 했다.
은하해방전선은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영화였는데 이번 GV를 보고나서 마음이 싹 사라졌다.

윤성호 감독은 자기 영화 속 주인공을 한남이라고 부르고, 자기 영화에 대해 안 좋게 말했다.
이제는 <은하해방전선>같은 영화를 만들어낼 것 같은 사람도 아니고
의뢰에 의해서만 작품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이제는 작가가 아닌 한 명의 트위터 많이 하는 회사원처럼 보인다.
영화에 대해 더는 질문하고 싶을 게 없어질 정도로 이 영화를 좋아하는데, 윤성호라는 사람이 싫어져서 언젠가는 은하해방전선이라는 영화를 잊어버릴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블 데드 2> 1편이 더 좋은 이유




철저히 주관적인 이유로 1편이 더 좋았다.
지인이 1편보다 더 재밌다고 해서 1편과 비교해서 볼 수밖에 없었다.

1. 필요 이상으로 잔인해졌다. 피의 양이 너무 많아짐
2. 기술력이 발전해서 고무찰흙으로 만든 듯한 귀여움이 줄었다.
3. 카메라도 열심히 쓰고 배우들도 생고생한다. 이건 박수~~!
4. 악령들이 사람을 골려준다는 느낌보단, 멍청하게 사람 하나도 제대로 못 잡는 느낌. 악령들이 문 하나도 제대로 못 들어가서 빈틈을 보이고, 결국엔 악령이 패배하는 결말까지 간다. 저정도 엄청난 힘을 가졌으면서 주인공 하나 못 잡는 건.. 역시 속편을 만들려는 속셈 때문이겠지?
5. 어떤 캐릭터는 매우 짜증나고 답답하다


3편은 아무래도 보지 않을 것 같다.
애쉬 vs 이블 데드도 보지 않을 것 같다.
이블 데드는 1편을 다시 보자.

<로우> 그래서 그 욕망을 어쩌자는거야?


동아리 사람들이 입을 모아 하도 쩐다고 말한 영화라서 부천영화제에서 보지 못한 게 한이 맺혔다.
연말에 영자원에서 상영할 때도 시험기간이랍시고 안 보러 가서 더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고어영화 보기 모임에 이 영화를 함께 보자고 했다.

영화 자체가 재미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좋아할 만한 영화인가 싶다.
기대했던 만큼의 무언가가 없다.
동아리 사람들한테 내 감상을 말하긴 했는데, 왜 이 영화를 괜찮게 보았는지 물어보지는 않은 것 같다. 꼭 대답을 들어야지.


쥐스틴의 식인 욕망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인 성향이었다.
부모는 그걸 참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아이들을 교육했지만, 나중에 가서 이런 큰 사건이 터지고야 말았다.
통제하려 했지만 결국 욕망은 터져나가버렸다.
가슴이 뜯긴 자국으로 가득한 아버지의 고백으로 인해, 참는 자의 입장에서만 생각하던 우리는 누군가에게 '참아야 한다'고 교육하는 자의 입장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부모는 쥐스틴을 그동안 모범생으로 잘 키워왔지만, 그녀가 새로운 환경에서 자기 안에 숨겨져 있던 식욕과 성욕을 발견해버려 교육은 실패한다.
그렇다면 우리 안의 위험한 욕망은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 것일까?
영화는 제시한 건 올바른 교육법이 아닌, 올바르다 생각했지만 결국 실패해버린 교육법이다.
욕망의 위험한 성질에 대해서 흥미롭게 풀어나가지도 못하고, 그 위험한 욕망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도 제시하지 않은 것이 못내 답답했다.


2018년 2월 4일 일요일

[디지몬 테이머즈] 황량한 디지털 월드



디지몬 시리즈 중 제일 세계관이 어둡대서 기대했는데
애니메이션 자체가 너무 휑해서 볼 게 없었다.
디지털 월드는 너무 척박하게 생겨먹어서 디지몬 생태계도 조성이 안 되어 있고
메인 캐릭터가 세 명으로 줄었지만 캐릭터가 그리 입체적인 것도 아니다.
그냥 디지털 월드 세계관 구축을 엄청 지루한 방식으로 못 알아먹게끔 한다.
게다가 디지털 월드와 리얼 월드 간의 연결은 너무 현실감 없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또 계속 적이 나타나고 그 적을 물리치는 패턴은 너무나도 지겹다.
십이지신은 각각의 개성도 없고 '뭐야 아직도 ~명이나 남았어?' 하게 만든다.

디지몬 테이머즈가 계속 거론되는 건 꽤 큰 비중으로 나오던 레오몬이 죽고, 그 파트너인 쥬리가 매우 소름끼치는 표정의 악당으로 복사되기 때문이다.
그것 말고는 매력적인 것이 딱히 없다.
이전까지의 디지몬 시리즈를 극중극으로 만들어 카드를 많이 팔아먹으려 했나보다.
끝까지 참고 보느라 너무 힘들었다. 아련한 엔딩은 잘 만들었지만..
다음 시리즈인 디지몬 프론티어는 보게 되기까지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디지몬 어드벤처 02] 돌려막기.. 하지만 울었다



내가 디지몬을 정말 좋아한다.
디지몬 어드벤처는 여러번 봤기에 파워디지몬을 정주행했다.
보고 나서 리뷰도 안 쓰고 디지몬 테이머즈를 완주한지도 꽤 된 시기이기에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엔딩이 정말 좋았다.
러브라인이나 캐릭터의 성격같은 걸 무시하고 주인공들의 미래를 정해버린 것이 욕을 먹나본데, 그건 관심이 없다.

디지몬 어드벤처 02의 최종빌런은 디지몬 세계에 대해 연구했던 인간이다.
하지만 디지몬 세계에 갈 수 없는 나이가 되어버려서 어린아이들을 이용해 디지몬 세계로 가려 했던 것이다.
결국 아이들은 그를 물리치는 데 성공하고, 그의 꿈을 이뤄주려 한다.
하지만 그는 목숨이 다해 나비가 되어 사라지고 만다.
울었다~~
마지막 에피소드에서만 나오는 어린아이들의 합창곡이 있는데 그 노래가 나오며 전세계의 선택받은 아이들이 디지바이스로 빛을 모으는 장면에서도 눈물이 쏟아졌다.

하지만 50화까지 다 지켜보자면 파워디지몬은 매우 지겹다.
그냥 아이들이 꾸준히 강한 악당을 만나서 자기 디지몬을 진화시키는 패턴의 반복이기 때문이다.
+ 어드벤처에 비해 새로 추가된 인물들이 매력이 없다.
++ 디지털 월드의 어딘가 구멍 숭숭 나있는 수채화 느낌 배경 정말 좋다!

밤샘영화제 <미스테리어스 스킨> 그 대단한 비밀이라는 게 뭔지 너무나도 잘 알 것 같다



주인공들이 과거에 겪은 일이 무엇인지 충분히 추측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마치 대단한 진실인 양 뒷부분까지 플롯으로 끌고가는 것이 정말 마음에 안 들었다.
밤샘영화에서 본 다섯 편의 영화 중 제일 별로였다.
이 영화를 연출한 그렉 아라키 감독이 드라마 [루머의 루머의 루머]도 참여했다는데, 보기가 망설여질 정도이다.

밤샘영화제 <샤이닝> 다시 봐도 아니다



나는 이 기회에 큐브릭의 <샤이닝>을 다시보게 될 거란 기대를 했는데
이제 앞으로 절대 보지 않을 것 같다.
다시 봐도 별로였다.

1. 안 무섭다.
사람들이 하도 호들갑을 떨길래 내가 예전에 영화 보는 눈이 없어서 안 무서워했나 싶었다.
하나도 안 무서웠다.
시간만 질질 끌고.. 느리고.. 소리만 시끄럽고..

2. 스토리
열심히 문짝에 도끼질 하다가 손에 칼 맞았다고 어디론가 사라지는 잭 토렌스.
그는 자기 아내를 죽일 마음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샤이닝이라는 소재를 완전히 죽여버린 시나리오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3. 인디언 어쩌구
인디언의 땅에서 그들을 몰아내고 미국을 세운 미국인에 관한 이야기..로도 읽을 수는 있으나
이렇게까지 돌려말하는 영화를 빨아제끼고 싶지는 않다.

앞으로 나한테 샤이닝을 보라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랑 친해긴 어려울 것이다.

<폴터가이스트> 한 장면만 믿고 봤다가



우연히 페북 컬트영화 페이지에서 한 남자가 얼굴을 긁다가 얼굴이 뜯겨져 나가는 고전 공포영화 클립을 보았다.
그게 화근이었다. <폴터가이스트>의 한 장면이라고 해서 감히 보았다.
영화는 공포가 뭔지는 알고 찍었나 싶을 정도로 액션영화 혹은 판타지영화스럽다.
집 안에서 '기이한 일'이라고 부르기 힘들 정도로 특이한 일이 벌어진다.
이것저것 물건들이 날아다니고 딸아이가 실종이 되고 집안은 박살이 난다.
섬세함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또 영화가 너무 스필버그적이다.
때 안 가리고 웅장한 배경음악이 나오는 게 제일 짜증나고
쓸데없이 시간 버리게 항상 어린아이의 시점이 강조되고
애완동물 혼자 무언갈 하는 장면도 무조건 필요하다.

인내심이 폭발한 건 심령현상을 해결해주는 어떤 아줌마가 나오고 나서인데
생긴 것과 목소리가 너무 비호감인 사람이 너무 오래 나온다.

너무 짜증이 나는 영화였다.
왓챠에 오랜만에 0.5점을 매겼다.
딱 하나 영화에서 놀랐던 장면이 있다.
<인셉션>에서 처음 한 것처럼 다들 얘기하던, 세트장을 빙빙 돌려서 중력에 이상이 생긴 것처럼 보이는 장면이 여기에도 나온다.
그리고 앞으로 나는 살면서 이 영화를 절대로 마주치고 싶지 않다.

< T2: 트레인스포팅 2> 팬심 그득한 2번의 감상 / T2의 문제점



다시 본 <트레인스포팅>은 정말 완벽한 작품이었다.
잡지에 트레인스포팅에 대해 글을 쓰려고 준비하던 중에 <T2> 파일을 구해서 보게 되었다.
오프닝은 전작 팬의 가슴을 뛰기에 충분했지만 영화 자체는 기대 이하였다.
하지만... 두 번 보니까 정말 좋다 ㅎㅎㅎ

일단 T2는 아쉽게도 전작에서 절대로 벗어나지 못 하는, 말그대로 '속편'이다.
내가 오프닝 직후에 김이 샌 것처럼, 추억팔이는 그리 오래 가지 못 한다.
하지만 본 영화는 애초에 전편의 추억팔이 이상의 작품이 되려는 생각도 없는 것 같다.
내용은 암스테르담에서의 새로운 인생에 실패한 렌튼이 기어코 자기가 배신했던 옛 친구들을 찾아가고, 탈옥한 벡비가 렌튼에게 복수한다는 이야기이다.
인물들은 늙어버렸고 고추도 잘 안 서며, 어린 애에게 자기 할 말만 한다는 소리나 듣는다.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은 과거를 알 때 더욱 깊이 와닿기에, 아무래도 전편을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몰입하기 힘들 것 같다.
그리고 T2를 보고나서 전편을 굳이 안 봐도 될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한다..

T2에는 트레인스포팅을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신선하게 다가갈 만한 요소가 없다.
T2를 처음 봤을 때 느낀 문제점은, 관객이 흥미롭게 지켜볼 영화 자체의 목표 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중심 플롯은 식보이와 벡비의 렌튼에 대한 복수이다.
하지만 복수 계획은 제대로 없고 웬 처음 보는 여자 꿈을 이뤄준답시고 식보이와 렌튼이 매춘 사업을 준비한다.
그러나 그들의 사업은 이미 업계를 쥐고 있는 깡패가 있다는 이유로 너무 쉽게 중단된다.
벡비는 그저 우연히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맞춰서 렌튼을 만나 복수를 시도한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중심이 안 서있고, 우연에 너무 많이 의존한다.
T2가 나온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어떻게 이들이 다시 뭉치는가 하는 의문인데, 영화는 렌튼을 설득력 있는 이유 없이 그냥 에든버러로 돌아오게 만든다.
게다가 렌튼이 식보이가 자살하려던 타이밍을 기가막히게 맞춰 도착한 것과, 또 마침 벡비가 그 때 탈옥한 것도 너무 작위적이었다.
게다가 렌튼은 굳이 식보이, 스퍼드와 사업까지 벌이다니.
네 명의 인물들을 너무 억지로 모은 것이 티가 난다.

러닝타임은 117분. 전편에 비해 25분 정도 늘어났다.
그만큼 캐릭터들은 더 깊어졌지만 속도감은 덜하다.
어쩌면 T2는 앞으로 20년 뒤에 나올 T3를 위한 준비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영화 내내 네 명의 주인공 그들의 입장에서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 힘쓰고, 그들의 미래를 열어놓는 식으로 끝이 나버리기 때문이다.
T2는 좀 실망이었어도 40년에 걸친 트릴로지가 완성된다면 그건 인정할 만하다.
나이듦이 20년 뒤라면 더 절실하게 와닿을 것 같다.



T2가 어떤 영화인지 잘 알고 나서 다시 한 번 볼 때는 정말 좋았다.
트레인스포팅 재탕 삼탕이 즐거운 것처럼, 이 영화도 좋아하는 마음이 앞서게 되니 그냥 재밌게 지켜보게 된다.
트레인스포팅 1편을 하도 재밌게 만들어서 이런 반응이 나온 거다.
20년 뒤에 3편은 제발 모든 혼을 끌어모아 제대로 만들어 달라!

<핫 걸 원티드> 가학적인 포르노 업계를 떠나는 한 소녀



내가 이것때문에 넷플릭스에 가입했다.
넷플릭스는 넷이서 한 계정을 쓸 수 있기에 동아리 선배가 같이 계정을 쓸 사람을 구하고 있었다.
여행을 가느라 며칠간 인터넷을 안 할 거기에 넷플릭스에서 서비스되는 작품들 리스트만 쭉 훑었다.
그 중 가장 관심이 가는 작품이 <핫 걸 원티드>라는 작품이었다.
미국 마이애미의 어느 포르노 브로커 밑에 있는 여성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 담았다.
나는 성 관련 산업에 관심이 많아서 이 작품을 봐야 할 것 같았다.

영화가 말하는 포르노 산업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배우들이 자기가 출연할 작품을 직접 고를 수 없어 안면학대 등의 가학적인 포르노에 강제로 출연해야 하는 구조적인 문제이다.
하지만 영화는 포르노 소굴에서 빠져나오고 싶어하는 배우 한 명의 이야기에 집중해 다른 배우들까지 대부분 이런 비극을 겪고 있을 거라 지레 짐작하길 기대하는 것 같다.
'업계는 잔혹하다. 그럼에도 돈 때문에 소녀들이 수없이 팔려나간다.'
이게 이 영화가 말하는 전부이다.

나는 업계에서 건전한 포르노가 성공하지 못 한 이유가 궁금하다.
건전한 포르노란 건 많은 배우들이 원한 것일테고 분명 시도도 있었겠지만 영화에 따르면 아직 그런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은 것 같다.
분명 이유가 있으니 지금처럼 배우들이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조성되었겠지.
하지만 성 산업에 대한 내 지식이 지금은 너무나도 부족하다.
앞으로 공부를 더 해봐야 할 것 같다.

영화 자체는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계속해서 이런 소재를 다룬 작품을 만나며 생각할 거리를 얻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린다 린다 린다> 고교시절의 어렴풋한 기억들



고등학생 소녀 밴드 영화이기에 좀 발랄한 분위기를 기대했지만, 템포가 느리고 조용했다.
알고보니 <모라토리움기의 다마코>라는 어느 심플한 영화를 연출했던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작품이었다.
배두나만 보고 고른 영화라서 다른 건 안중에 없었다.

배두나는 은근 비중이 크다.
일본어 못 하는 유학생 역할인데 일본어로 노래를 불러야 하는 밴드의 보컬을 맡는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남은 건 친구 사이의 갈등이다.
밴드가 급조된 것이 바로 이전 멤버들 사이의 갈등이었는데, 클라이막스인 공연 직전에 그 갈등이 은근하게 풀린다.
이런 식의 화해가 마음에 들었다.

노래는 생각보다 좋았다.
공연을 보는 학생들이 지나치게 열광하는 것이 좀 작위적이긴 했지만
그 장면 자체의 분위기가 좋았다.
비 오는 여름에 비 다 맞고 나서 몸이 다 마르기도 전에 무대에 올라 공연하는 그들!
영화 볼 당시에는 스타일이 마음에 안 들어서 안 좋아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감수성 짙은 영화였다.

<마사안> 뮤지컬 없는 인도영화 / 해결 아닌 해결



<미르싼>이라는 엄청난 영화를 작년 부천에서 만난 후로 발리우드 영화에 계속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마땅히 볼 작품이 안 보였다.
그러다 이번에 넷플릭스 한달 무료도 시작한 김에 서비스되고 있는 인도영화 중에서 마음에 드는 걸 골라보기로 했다.
모든 인도 영화의 줄거리를 꼼꼼히 읽어 보았는데, 다 재밌어 보였다.
그 중 인도 사회의 계급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 같아 보이는 <마사안>에 관심이 갔다.
이런 분위기에서 노래하고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올 수 있을까 싶었는데, 103분의 짧은 러닝타임답게 그런 건 없었다.

부패경찰로부터 성추문 관련 협박을 당하는 여자와 그의 아버지.
그리고 화장터에서 나고 자라 일하지만 상류층 여자를 사랑하게 된 남자.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던 여자와 남자는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배에서 인연을 맺게 된다.

답답함이 주된 정서였다.
예상한 것과 크게 다른 정서는 아니었는데, 주인공들이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마음에 안 들었다.
모두가 사회 내부에서 힘겹게 자기 문제를 덮어두고 감정이 추스러지기를 기다리기밖에 하지 못 한다.
사회 자체의 문제를 풀어낼 해답은 안 보이고, 그걸 건드려볼 사람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답답한 현실을 묘한 해피엔딩으로 끝내버리는 건 이도저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내게 그다지 매력적인 작품은 아니었다.

인도 사회에 대해 더 잘 알았다면 인도를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 사회가 깊은 무력감에 빠져 있다면 거길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임시변통이 더없이 완벽한 해결방식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사안>이 잘 못 만들어진 작품은 아니지만, 인도에서 나올 수 있는 평범한 얘기를 무난한 스타일로 다뤘을 뿐이다.
다음에는 꼭 춤추고 노래하는 발리우드 영화를 봐야겠다!

2018년 1월 1일 월요일

<셜록 주니어> 나는 그의 코미디를 가벼운 마음으로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싶다




'엥 나는 이 영화 생각없이 봤는데? 여러분 그냥 웃으세요!! 영화가 뭐시기 어쨌고 부담 안 가지셔도 됩니다. 깔깔깔 폭소할 정도는 아니지만 버스터 키튼 특유의 따라하면 큰일나는 액션과 오버하지 않는 귀여운 표정연기 보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답니다.'

동아리 영화 잡지에 나는 이렇게 짧고 가벼운 평을 남겼다.
나는 이 영화에 거추장스러운 의미부여 하는 것이 정말 싫다.
버스터 키튼이라는 사람을 빨아야 하긴 하겠고.. 그런데 남긴 작품들이 다 비슷비슷한데.. 거기서 대표작으로 뭘 골라야 할까? 역시 의미부여하기 좋은 걸 골라야겠지!
나는 찰리 채플린보다 버스터 키튼을 좋아하는 게 그냥 웃을 수 있어서이다.
제발 웃음은 웃음 그 자체로 영원히 남았으면 좋겠다.

무비올데이롱 제1회 3/3<무서운 집> 미안해 나는 이 영화 재밌을 줄 알았어...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영화라서 적극 추천했으나 기대와는 전혀 다른 영화였다.
자기가 자기 영화의 매력을 잘 알고 그걸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영화인 줄 알았으나, 시간 낭비가 너무 심해서 지켜보는 것이 괴롭다.
나는 마음껏 웃을 준비가 되어 있는데, 영화는 아주머니가 집안일하는 것을 그저 보여주는 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같이 보자고 한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해서 더 짜증이 났다.
밀도가 너무 옅은 영화였다.

집안일의 외로움을 표현했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있으나
그걸 꼭 이런 식으로 관객까지 지루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

무비올데이롱 제1회 2/3 <더 플라이> 리액션 좋은 친구와 함께하니



<더 플라이>를 다 함께 감상하는 것은 무비올데이롱 행사에서 세 편의 영화를 보면서 가장 즐거운 경험이었다.
잘 놀라는 친구가 한 명 있어서 깜짝 놀라는 장면들이 더 긴장감 있게 느껴지고, 재미도 있었다.
역시 공포영화는 공포영화 잘 못 보는 친구와 함께해야 한다.

<더 플라이>가 좋아서 그 후로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영화를 몇 편 더 찾아보고 있는데
역시 이 작품만한 것이 없다.
하지만 정작 그는 이 영화를 별로 안 좋아한다고 한다.
<더 플라이>는 지금까지 본 그의 영화들 중에서 가장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이해가 안 가는 부분도 없어서 몰입감이 아주 좋다.

<네온 데몬> 더 막 나갈 수는 없었을까



<리얼>을 가지고 교내 라디오에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것과 유사한 영화를 하나 말해달라고 해서 <네온 데몬>을 꾸역꾸역 보고 갔다.
결국엔 이 영화를 가지고 이야기할 기회가 없어서 시간 날린 셈이다.
<리얼>과 <네온 데몬>은 비등비등하다.
네온 데몬이 특별히 담고 있는 게 있어보이긴 하지만, 이해가 안 가긴 마찬가지이다.
망작을 보더라도 좀 더 고급스럽게 즐기고 싶다면 네온 데몬을, 좀 더 웃고 싶다면 리얼을 보면 된다.

비주얼은 매우 근사하다.
하지만 언제나 느꼈듯 2시간 정도의 시간성을 가진 영화에는 항상 스토리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
'예쁜 쓰레기'라고 부르고 싶다.
좀 더 잘 만들었더라면 재미도 있고 더 예뻐보이기도 했을텐데..

가장 큰 문제점은, 비주얼로 승부하는 영화답게 내용에 별로 신경 안 쓰고 눈에 보이는 것만 신경쓰려 했으나 아름다움을 대변하는 주인공이 다른 여자 출연자들에 비해 그리 아름답지 않다는 것이다.
(음악은 잘 썼다!)
아예 거추장스러운 상징을 암시하는 것들도 다 빼버리고 완전히 2시간을 형광색 이미지들로만 채워놨더라면 어땠을까?
<스프링 브레이커스>라는 형광생 영화 하나를 봤던 게 기억이 난다.
그 영화는 싸구려 영화 플롯에다가 근사한 이미지를 입혀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여러 모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공포스러우면서 고혹적인 영화 한 편이 나올 수 있었을 텐데.

<애정만세> 차이밍량 다시는 안 본다. 느린영화 다시는 안 본다. 졸린영화 다시는 안 본다.



야한 영화를 보고 싶었다.
차이밍량의 <안녕, 용문객잔>을 보고 나서 앞으로 느린 영화는 안 보기로, 졸린 영화는 안 보기로 했는데
아무래도 그가 초기에 연출한 <하얀 비키니의 복수>가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져
그나마 그의 작품 중 야해 보이는 <애정만세>를 보았다.
분명 영화 보기 전에 베드신도 있는 것을 확인했는데
영화는 무지무지 졸렸다.
대사도 없고, 사람들 행동 속의 심리가 읽히지 않았다.
또. 망했다 싶었다.

지켜보는 것이 무지무지 힘든 경험이었다.
앞으로 이런 실수는 더 안 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