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31일 일요일
<스크림> 반전을 위한 반전이 뭐가 그리 좋은 건데?
고어영화 소모임에서 <살로 소돔의 120일>을 보려다가 파일을 못 구해서 본 영화.
호러영화 매니아인 또라이 둘이서 연쇄살인을 벌여 그 중 한 명의 여자친구를 괴롭혔다는 반전을 가지고 있다.
의도적으로 흘리는 복선들이 많아 결말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대부분의 장면들이 밝은 곳에서 찍혔으며, 주로 관객을 깜짝 놀래키는 식의 호러이다.
주인공들이 10대라 경쾌하다가도 무서운 장면에서는 음악으로 분위기를 잘 뒤집는다.
하지만 고유의 분위기를 느낄 수는 없었다.
사람도 많아 북적거리고, 조명이 밝고, 배경음악도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들었을 법한 음악이었다. 분위기가 특별한 영화는 아니었다.
결말은 정말 별로였다.
순정남으로 보였던 남자친구가 사실은 범인이었다!라는 반전인데, 영화 내부에서는 단서를 전혀 찾을 수가 없다.
영화 속의 논리대로라면 남자친구가 범인이 아닐 수도 있는데 오로지 반전을 위한 반전으로 굳이 그를 범인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나는 이런 반응이었다. '얘가 범인이었구나.. 그래서 어쩌라고?'
한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전개가 재미있긴 했지만, 뉴타입 호러영화로서의 자의식이 너무 강했다. 계속 대사로 호러영화 얘기를 해서 맥이 빠졌다.
또 로즈 맥고완이라는 배우는 예뻐서 좋았다.
<밤과 안개> 유대인 학살이라는 과거를 마주하다
동아리에서 친한 형이 <밤과 안개>와 <셜록 주니어>를 묶어서 발제했다.
<밤과 안개>는 유대인 학살을 회고하는 단편 다큐멘터리이다.
영화는 학살이 일어났던 공간에 아무도 없고 텅 빈 모습과, 흑백으로 된 처참한 기록물들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거기에 나지막한 내레이션이 깔리는 것이 정말 좋았다.
해외의 고통스러운 역사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영화를 끝맺는 내레이션이 정말 좋았다.
"휴전이 되었지만 한쪽 눈은 언제나 뜨고 있어야 한다. 막사들 근처 사열하던 운동장 위엔 잡초가 무성하다. 황폐한 이곳엔 아직 묵직한 위기감이 감돈다. 소각로는 더이상 가동되지 않고 나치의 교활함은 오늘날 애들 장난으로 치부되고 있다. 9백만이 떼죽음을 당했다. 우리들 중 누가 이 흉측한 감시탑 위에서 새로운 사형집행자들의 출현을 경고할 것인가? 우리들과 딴판으로 생겼을까? 우리들 가운데 운좋은 카포들이나 복직된 장교들과 익명의 밀고자들이 어딘가 숨어 살겠지. 아마 믿지 않거나 보는 동안만 믿으실 분들도 있을 것이다. 여태 우리가 진실된 응시를 통해 살펴본 잔해, 마치 오랜 괴물이 편린 바로 아래를 밟아 뭉개놓은 형상들을... 마치 우리가 본 영상이 과거속으로 잊혀진듯 수용소에서의 재앙이 단번에 영구히 치유된 듯 다시 희망을 잡은 척 할 수도 있겠지. 그런 일들이 단 한 번, 어떤 장소와 기간에만 있었던 척 할 수 있겠지. 우리 주변에 일어났던 일을 못 본 척, 인류의 끊임없는 울부짖음을 못 들은 척 할 수도 있겠지."
이 말은 우리나라의 과거사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이리라.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어디서도 보지 못한 시체 이미지들이다.
영화 자체는 이것들을 자극적이지 않게 보여주려 한 것 같으나, 이런 이미지들 자체가 너무 생소해서 충격이었다.
<두뇌혁명 A.I.> 과학자도 돈에 쪼들리는 한 명의 사람
인공지능 기계를 만드는 공돌이들을 찍은 다큐멘터리 영화.
그들의 고민은 주로 돈이었다.
원제는 Machine of Human Dreams.
A.I.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많아져서 제목을 <두뇌혁명 A.I.>로 지은 것 같은데 내용은 제목과 다소 갭이 있다.
이쪽 분야로 갈 사람이라면 한번 볼만한 영화인 것 같다.
<혹성탈출: 종의 전쟁> 전혀 새롭지 않았다
진화의 시작, 반격의 서막에 이은 세번째 혹성탈출 프리퀄이다.
냉정히 말해서 앞선 두 편의 작품에 비해 새로운 것이 하나도 없었다.
혹성탈출 제1편의 연결고리인 바이러스를 설명하기 위한 관습적인 작품에 불과했다.
<반격의 서막>은 파격적이었던 전편에 뒤지지 않게 코바라는 캐릭터를 등장시켜 주인공의 고민을 심화시켰던 것이 기억이 난다.
<종의 전쟁>은? 있으나 마나 한 군인 캐릭터를 통해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것이 전편과 똑같은 패턴이고, 코바도 주인공의 환상으로 또다시 등장하는데 전혀 새로운 고민을 찾을 수 없었다.
인간과 유인원 간의 형세가 바뀐 것 밖에는 차이가 없었다. 전편과의 차이점은 단지 시간이 흘렀다는 것 뿐이다. 러닝타임도 긴 영화는 주인공이 장애물 로 가로막힌 미션을 수행하는 것으로 관객을 즐겁게 해 주는 데에만 시간을 썼다.
인간 소녀가 나오고, 분위기를 띄워주는 캐릭터도 나오고, 착취당하는 유인원들은 씨가 말라가는 인간에게 대항한다.. 시저는 영웅으로 퇴장한다.
뻔하고 당연하다. 지루하고 재미 없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혹성탈출 시리즈를 좋아하기에 옛날의 혹성탈출들도 정주행하고 싶어졌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일본에 불시착한 미국남녀
좋아하는 형이 발제한 영화이다.
왜 좋아하는지 이해는 잘 안 간다.
나름의 이유를 말해주긴 했는데 그 당시에도 이해 못 하고 그냥 넘어간 것 같다.
나는 잡지에다 짤막하게 이런 평을 남겼다.
(일본에서 소외감을 느끼던 서양 남녀 둘의 감정이 싹트는 이야기. 내가 일본인은 아니지만 같은 동양인의 입장에서 일본 사람들을 이상한 존재로 그린 것이 보기 안 좋았다. “일본 사람들이 주인공에게 선의를 베푸는 역할로 나왔어야 한다!” 라는 요구가 아니라, 그것 때문에 나는 이 영화를 좋아할 수가 없었다는 거~)
.멜로 부분에서는 느낀 것이 별로 없었다.
빌 머레이는 내 취향이 아닌 것 같다.
여자가 물구나무서서 다리를 쫙 벌리는 스트립바 씬은 유독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스칼렛 요한슨이 어딘가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컷과 일본의 오타쿠들을 이어붙인 씬도 기억에 남는다.
라벨:
동아리,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소피아 코폴라
2017BIFAN <빌로우 허 마우스> 푹 젖어드는 레즈비언 영화
2017년 BIFAN을 멋지게 마무리해준 훌륭한 작품.
이번에 본 유일한 금지구역 섹션 영화로, 여자가 예쁘니 보라는 덧글 때문에 보게 되었다.
두 여자가 주인공인데 영화 내내 주구장창 섹스를 한다.
그런데 그게 싫지 않다. 영화가 정말 섹시하고 좋다.
분위기에 한껏 젖을 수 있었다.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기분이 정말 좋았다.
질문을 하나 했다. 영화 속 주인공은 남편을 버리고 불륜을 한 셈이 되는데, 이게 마음에 걸렸다.
불륜 자체에 대해 별 생각은 없었지만 홍상수가 겁나게 욕을 먹는 상황을 보다 보니 사람들이 이렇게 불륜에 있어서 민감했나 싶었기 때문이다.
똑같은 불륜이라도 그것을 불륜 당사자의 입장에서 그려낸 영화라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을 할까?
다소 어이없는 질문이었다. 감독님은 불륜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셨다.
사람들은 각자 저마다의 기준을 택하고, 기준이 없는 사람도 있으며, 자기가 유리할 때 주로 나서니 그냥 신경 덜 써야겠다.
두 장면이 좋았다.
하나는 이성애자로 살았던 주인공이 동성과의 섹스 후에 새로 태어났다는 것을 상징하는 장면.
욕조 물에 머리까지 담그고 있다가 나오는 장면이었는데, 엄마 뱃속에서 양수에 젖은 채로 나오는 아기 같았다.
또 하나는 냉장고에 몸을 기대고 섹스를 하는데 못 박는 소리 비슷한 것이 들리는 장면.
주인공 한 명의 직업을 상징하는 소리가 정말 매력적인 순간에 삽입되어 좋았다.
이런 식으로, 관객 입장에서 충분히 발견할 수 있는 기교가 좋았다.
나도 나중에 영화를 만든다면 그리 어렵지 않은 장치를 심도록 해야겠다.
2017BIFAN <벗어날 수 없는> 기이하기만 하고 해결되지 않는 미스테리
볼까 말까 고민하다가 예고편에 들어간 장면의 편집 센스가 너무 좋아서 보게 되었다.
그 장면은 낚싯배에서 물 속으로 뛰어든 형제가 나오는 장면. 편집 리듬이 너무 좋았다. 숨 죽이고 봤을 땐 없더니 돌아서면 깜짝 놀라게 하는 수법.
영화 자체는 정말 별로였다.
사이비 집단을 배경으로 하는데 계속해서 특이한 일이 일어나는데 해명은 되지 않는다.
마지막에 형제의 갈등이 해결되는 것으로 끝이 나지만, 나는 궁금증들이 해결이 안 돼서 많이 답답했다.
미스테리 장르는 어떻게 다뤄야 하는 것일까?
미스테리를 미스테리로 남겨놔야 하는 걸까? 해결해줘야 하는 걸까?
미스테리 영화를 볼 때 그 미스테리가 풀리길 바라는 건 잘못된 태도일까?
다음 영화를 위해 GV는 잠시 듣다가 건너뛰었다.
2017년 12월 30일 토요일
<고양이를 부탁해> 보기 드문 우울한 국산 청춘영화
배두나가 보고싶어서 찾은 영화이다.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라는 발랄한 멜로영화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영화이다.
고등학교 때 친하게 지냈던 다섯 명의 그룹 내에서 외톨이처럼 지내는 우울한 지영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똑같이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스무살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스물>이라는 영화와는 다르게 정말로 20살 시기에 놓인 아이들이 할 법한 어려운 고민들이 담겨있다.
분위기가 좋아서 다음번에 꼭 다시 보고싶다.
2017BIFAN <어둔 밤> 가장 웃긴 한국영화
스틸컷을 보고 어린 애들이 만든 학생영화인가 해서 안 볼 뻔 했으나 시간이 맞아서 보게 되었다.
나는 이 영화를 볼 수 있었던 우연에게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
영화 보기 전에 취소표가 하나 무료로 풀렸는데 그 표를 취소했을 한 사람이 불쌍하게 여겨질 정도이다.
이 영화는 매우 재밌다.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찍혔는데, 크리스토퍼 놀란의 <Dark Knight>를 우리 말 식으로 Dark Night로 바꾼 뒤 해석한 '어둔 밤'이라는 패러디 단편영화를 찍는 대학교 영화 동아리 학생들의 이야기이다.
줄거리도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 영화 정말 재미있다.
영화 내내 깔깔깔 웃었다.
배우들의 디테일한 연기, 사실적인 마스크가 일품이다.
영화는 거의 3부로 구성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둔 밤'의 감독이 군대 가기 전의 이야기, 1부의 초짜들이 선배가 되고 후배들이 영화를 다시 찍는 이야기, 그리고 그렇게 탄생하는 <어둔 밤>.
영화 초반부도 엄청 웃긴에 뒤로 갈수록 더 파격적이고 더 재밌다.
GV도 있었다. 기억에 남는 질문은 저작권법에 걸릴 것 같은데 개봉할 수 있냐는 질문이었다.
감독은 가만히 생각하더니 빵 터졌다. 자기는 개봉을 계획한 적이 없다고 한다.
저작권 문제가 해결이 된다면 개봉할 수 있겠지만, 특별상영 형식으로 여기저기서 상영을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영화랑은 다르게 조용하게 웃기는 스타일인 것 같아서 인스타그램 팔로우도 해 놓았다.
다음에 기회가 될 때 친구들을 데려다가 이 영화를 같이 보러가고 싶다.
2017BIFAN <커피 느와르: 블랙 브라운> 커피도 못 잡고, 느와르도 못 잡았다
<네버다이 버터플라이>, <사돈의 팔촌>의 감독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형편없는 영화였다.
커피에 관한 영화라니 커피를 한 잔 까지 사갔는데 영화가 너무 별로였다.
'커피가 불법이라면?'이라는 특이한 상상에서 나온 영화이다.
커피를 팔아서는 안 되는 카페 직원들이 마약 조직들이 마약을 다루는 것처럼 커피를 다룬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 특이한 설정이 왜 필요한건지 스스로 알지 못 한 것 같다.
코미디를 위해서? 아니면 커피가 좋아서?
커피 트레이로 무술을 연마한다는 것이 이 영화의 코미디이고, 커피를 가지고 이렇게까지나 아둥바둥하는 것은 영화 초반에만 귀엽게 봐줄 만하다.
영화를 이끌고 나가야 하는 기본 뼈대는 느와르인데 액션도 유치하고 어줍잖은 사랑 때문에 자기를 희생하는 인물 또한 너무 유치하다. 분위기가 살지 않는다.
느와르도 못 잡고, 커피도 못 잡은 영화였다. 편집을 아무리 다시 해도 볼만한 결과물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장현상 감독이 더 잘 하는 영화를 보여주였으면 좋겠다.
라벨:
장현상,
커피 느와르: 블랙 브라운,
BIFAN
<페스티발> 성도착자 캐릭터들을 다룬 메이저 영화
이 영화는 어느 동네 사람들의 성적인 고민들을 분절적으로 다루는 가벼운 영화이다.
메이저 영화에서 이런 소재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영화는 발랄한 음악과 편집 리듬으로 통통 튀게 만들어졌다.
뒷부분에 가서는 일반적인 멜로영화의 패턴을 답습하기는 하지만 소재가 마음에 들어서 미워할 수만은 없었다.
무비올데이롱 제1회 1/3 <마더> 고속버스 씬의 경이로움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원래 한국 최고의 영화로는 <올드보이> 한 편만을 꼽았다.
이제는 <마더>도 같이 말해야겠다.
이 영화는 원래 볼 계획이 없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영화 4편을 몰아서 보기로 했는데, 첫 번째 영화를 제안했던 사람이 안 와서 다른 친구가 보고싶다던 <마더>를 설득해서 흑백으로 틀어버렸다.
역시는 역시.
첫번째 볼 때 울었고, 다음에 우연히 예고편 볼 때도 울었고, 이번에도 울어버렸다.
이 영화의 완성은 엔딩이다.
신이 내려준 장면이라 불리는 이 영화의 고속버스 엔딩은 우리나라 영화사에 길이길이 남아야 한다.
정말 아름답게 찍혔다.
영화 잡지를 만들 때 <마더>에 관한 얘기를 적어보려다 아직은 내가 건드리기 어려울 것 같아서 하지 않았다.
어차피 나중에 또 볼 것이다.
다음에 또 볼 것이 기대가 된다.
<더 퍼지> '소재는 괜찮았다'는 말은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
작가를 읽어낼 수 없는 영화는 웬만하면 안 보는 편이다.
<더 퍼지>는 만드는 사람의 자아를 읽어낼 수 없는 영화이다.
간만에 다른 타입의 영화를 봤는데, 이 영화가 너무 별로라서 앞으로도 쭉 기존 방식을 고수하게 될 것 같다.
영화는 전개가 너무 답답해서 울화통이 터지니 몰입을 할 수가 없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집이라는 공간을 전혀 집이 아닌 것처럼 찍어놨다는 것이다.
딸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는데 이름을 불러서 찾으면 될 일을 숨 죽이고 찾는다.
가까이 있는 사람의 발자국 소리조차 인물들은 절대 듣지 못 한다.
뭐 이런 얘기를 하자면 끝이 없다. 어차피 영화가 이러저러해서 별로라는 말은 하나마나 한 말이다.
소재 자체는 그럴듯해서 생각을 정리해볼까도 싶었지만 이따위 영화를 가지고 고차원적인 얘기를 해야 하는 것이 수치심이 들어서 하지 않겠다.
이 영화에는 영화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개연성이 결여되어 있다.
숙청의 날.. 겉멋 든 악역.. 어줍잖은 정의 세우는 주인공..
기본적인 짜임새는 없이 뭔가 그럴듯한 것을 만들려고만 한 흔적이 보인다.
그러니 플롯이 숭숭 비고 짜증이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끝내주는 A와 Z만 있다고 영화가 되는 게 아니다.
그 사이를 매끄럽게 이어주는 B부터 Y가 있어야 비로소 A와 Z가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이다.
해서는 안 되는 실수를 하나만 한 것도 아니라서 이 영화의 잘못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내기엔 시간이 아깝다.
나는 더 이상 이 영화에 시간도, 감정도 쏟고 싶지 않다.
앞으로 영화를 만들 때 실수를 안 하려고 영화의 잘못된 점을 찾아내는 건 이 영화를 보니 무의미한 짓 같아 보인다.
하면 안 되는 게 너무 많다. 그냥 잘 만들어진 영화 하나 따라가는 게 훨씬 낫겠다.
<벌거숭이> 압도적인 아우라
영화제에서 <노다지>라는 단편을 보려고 한 적이 있는데 못 봤다.
<벌거숭이>는 그 단편을 찍은 감독의 데뷔작이다.
러닝타임은 76분 정도로, 유명한 영화가 아니라 정보가 많이 없다.
끝나고 나서 보니 주연배우가 얼마 전에 [전체관람가]에서 본 오멸 감독 영화의 PD였다.
<벌거숭이>는 어느 숨막히는 가정의 이야기, 그리고 농약을 먹고 다같이 죽으려다 홀로 살아남은 가장의 이야기를 다룬다.
아무런 정보 없이 봐서 충격이 더 컸다.
영화가 딱 절반 지점 가서 가족 세 명 중 두 명이 죽어버린다.
폭력적인 남편으로부터 고통받는 아내의 시점에서도 영화가 진행되었기에 이는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농약을 먹고 죽자는 남편에게 화가 난 아내가 밥을 한 그릇 떠서 거실로 가자 이미 남편이 자고 있던 아들에게 농약 탄 콩나물국을 먹이는 그 장면...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우선 이 영화는 충격을 주는 데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기 며칠 전 아는 형과 나눴던 대화가 마음에 걸렸다.
그 형은 여배우의 노출이 배우에게 정신적 해를 가하지 않는 선에서 영화를 찍을 것이라고 했다.
이는 노출연기뿐만 아니라 다른 형태로도 배우를 정신적으로 착취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들렸다.
그 관점에서 보자면 <벌거숭이>는 아마 최악의 영화일지도 모른다.
절대로 행복하게 웃고 떠드는 친구같은 동료들끼리는 이런 영화가 안 나올 것 같다. (그냥 내 추측이다.)
그리고 주인공이 석탑에 목을 매다는 장면은 어떻게 찍었나 싶을 정도로 위험천만하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정신적으로 매우 고통스러운데, 이걸 찍는 배우들은 괜찮았을까?
영화의 절반 정도는 남자주인공의 혼이 나가버린 모습이다.
영화 자체는 내 마음에 들었지만, 위험하게 찍혔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든다.
나는 이 영화가 좋다.
내 모든 것을 잊고 몰입하게 만드는 압도적인 에너지가 있기 때문이다.
꿈도 희망도 없는 이 영화를 보고 누군가는 메시지가 부족하다고 말할 것이다.
메시지? 그런 것보다 이 영화에는 유니크한 아우라가 있었다.
간만에 아무런 정보 없이 접하고 본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힘을 느꼈다. 좋았다.
2017년 12월 20일 수요일
<러빙 빈센트> 예쁜 헛수고
하도 주위 사람들이 좋다고 해서 봤는데 정말 별로였다.
영화는 한 치의 유머도 허락하지 않는 꽤 진지한 스타일이었다.
단점을 꼽자면 영화가 하고 있는 얘기 자체가 그리 많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억지로 95분의 러닝타임을 채워놓은 느낌이다.
감독이 더 능력있는 사람이었다면 이 이야기를 차라리 단편영화로 만들었을 것이다.
주인공이 고흐와 함께했던 사람들을 하나둘 만나면서 그의 죽음에 대해 알게 된다는 것이 메인 플롯인데, 주인공은 추리 비슷한 것도 하지 않고 그냥 인물들이 한마디 한마디 들려주는 것이 이야기의 진행이다.
나중에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도 그냥 그동안 보이지 않던 가셰 박사가 나와서 이야기를 술술 읊어주는 것이 전부이다.
추리물을 쓸 능력도 없는 사람이 고흐에 대한 장편영화는 만들고 싶고. 억지로 시간을 채울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 중요한 건 이 영화가 유일한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는 '유화 애니메이션'이다.
나도 그게 궁금해서 극장을 찾았다.
그래, 신기하긴 하다. 그런데 그 신기한 게 채 5분을 못 간다.
카메라가 공간을 날아다니는 시점 샷이 어떻게 그림을 다 그렸나 싶을 정도로 경이로운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야기가 재미없는 걸 알아차리고 마음이 떠나면서부터 내 눈에 그림들은 다 불필요한 노동이 되어버렸다.
그냥 특이한 기록을 세운 데에 만족하고 끝날 수 밖에 없는 영화인 것 같다.
나중에 로토스코핑 기법이 발전해 더 멋진 장면을 만들 수 있게 될 때쯤 "예전에는 이런 걸 다 손으로 그린 영화가 있었대!" 하고 회자될 수는 있겠지.
하지만 실제 배우를 써서 영상을 촬영한 뒤 그걸 유화로 따라그리는 방식이었는지, 사람의 형태가 너무 정형적이라서 사람이 손으로 그린 느낌도 잘 나지 않았다.
정말 딱 5분짜리 단편으로 만들었더라면 인터넷을 돌아다니면서 신기하다고 좋아요는 많이 받을 수 있었을텐데.
보기 예쁜 것만으로 영화의 전부를 채울 수는 없다.
이야기가 중요하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고흐라는 사람에 대해 가지고 있던 궁금증은 영화가 끝나도 해결이 되지 않았다.
그림을 잘 그리긴 했지만 사람들에게 사랑받지도 못 하고 생전에 자기 그림을 단 한 장밖에 팔지 못 했던 고흐가 사후에 어떻게 이렇게 유명해질 수 있었던 것일까? (이건 따로 알아보면 되겠지만 그렇게까지 찾아볼 정도로 관심이 있는 건 아니다)
고흐의 특이한 성격같은 건 사실 그리 관심이 없다.
영화에 묘사된 대로라면 불쌍하긴 하지만 사랑하고 싶지는 않다.
불우한 예술가의 행적에서 "불우"만 너무 강조된 느낌이라 싫었다.
예술에 대한 고흐의 생각같은 건 제시되지 않고, 그냥 어느 우울한 한 사람의 얘기가 나온다.
우리는 이 얘기를 왜 들어주고 있는 걸까?
그냥 다른 우울한 사람들과 다르게 그냥 그림을 잘 그린 유명인이기 때문이다.
하고 있는 얘기는 별 것 아니지만 그 사람이 고흐라서 특별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만약 내가 고흐의 이웃이었다면 성격 때문에 그를 싫어했을지도 모른다.
<용의 국물> 유투브에서 발견한 한국 성애영화
1
유투브에 '강원도의 힘'을 쳤다가 <용의 국물>이라는 영화를 발견해 버렸다.
나는 며칠 전부터 음란물의 예술성에 대한 생각이 많았던지라
<용의 국물>이라는 해괴한 제목을 한 옛날 에로영화(심지어는 '성애영화'라고 적혀있다)를 볼 수 있을 때까지 한 번 봐보기로 도전했다.
2
영화는 처음부터 대놓고 정사신을 보여주더니 틈만 나면 상황만 살짝 다른 정사신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나올만 하면 나오는 그 타이밍이 처음에는 되게 웃겼는데 계속되다 보니 많이 지루했다.
그리고 기존에 내가 보아오던 영화들의 정사신들에 비해 <용의 국물>의 정사신들은 그 길이가 상당하다.
하지만 그 긴 시간 동안 배우들은 몸만 열심히 들썩인다.(+ 남자들이 으쌰으쌰 영차영차 하는 소리도 낸다)
배우들의 흥분이 점차 달아오르다가 빵! 하고 터져야 관객인 나도 약간의 흥분은 할 수 있을텐데 이 영화에는 그런 게 없다.
영화가 88분의 길이로 꽤 긴 감이 있는데, 그냥 정해진 러닝타임을 채우기 위해서 주먹구구로 정사신을 채워넣은 것 같았다.
영화에 나오는 '사람'이라면 다 한 번씩 짝을 돌려가며 섹스를 한다.
하도 지루해서 뒷부분 가서는 처음으로 배속 재생 기능을 쓰게 되었다.
가장 충격적인 정사신은 식당 주방에서 짜장면에 들어갈 면을 몸에 두르고 섹스를 하는 장면이다.
3
다른 에로 영화들을 유심히 살펴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용의 국물> 이 영화는 다른 영상물들과 구분이 가능할 정도의 내용을 갖추고 있다.
'용의 국물'이라는 중국집에서 주방장 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아줌마 아저씨들의 암투극이다.
물론 재미는 없다. 하지만 너도나도 섹스하는 영화 내부의 가치관은 보면 볼수록 놀라웠다.
4
남자 배우들은 꽤 몸이 좋은 편이었다.
여자들는 시대에 따라 화장법이 많이 바뀌어서 화장이 많이 촌스러워 보였다.
총 세 명의 여자들이 등장하는데 그나마 정사신에 열심히 임하는 배우와, 몸이 예뻐서 지금 시대에 태어났어도 예쁨받았을 법한 한 배우 덕분에 지루한 시간을 버틸 수가 있었다.
5
시험기간이라서 이런 영화도 볼 수 있는 것 같다.
보고 싶은 영화들 많은데 제쳐두고 굳이 이런 영화를 봐 버렸다.
옛날감성이라도 느껴보고자 했으나 딱히 그럴 수 있는 영화도 아니었다.
매력있는 쌈마이를 보고 싶었으나 그냥 시간 낭비해버린 느낌.
다음에는 인지도 있는 한국 에로감독 봉만대의 영화를 봐볼 생각이다.
이번에 <용의 국물>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들었는데, 에로 영화들을 더 보다 보면 그 생각이 글로 쓸 만한 정도로 발전할지도 모른다.
2017년 12월 15일 금요일
<러브 미 이프 유 데어> 로맨틱 코미디 영화는 다 똑같이 보인다
본지 그리 오래되진 않았는데 기억이 많이 날아가 있다.
어린 시절부터 내기를 하며 놀았던 남녀가 나중에 커서 사랑으로 발전한다는 이야기.
좀 또라이같은 게 매력포인트인 영화이다.
마리옹 꼬띠아르의 젊은 시절을 볼 수 있어 좋았다.
동아리에서 간만에 했던 가벼운 영화인데
너무 가벼워서인지 딱히 할 얘기가 없었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라면 이래야 한다는 기본적인 구색만 갖춘 영화인 것 같다.
<돌아온다> 2017.12.09 KU 시네마트랩. 허철 감독 GV
"여기서 막걸리를 마시면 그리운 사람이 돌아옵니다."
막걸리를 좋아하는 나이기에, 막걸리가 주 소재로 나오는 영화를 보면 앞으로 막걸리를 더 좋아하게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영화가 별로였다. 게다가 막걸리가 그리 중요하게 나오지도 않았다.
1
"여기서 막걸리를 마시면 그리운 사람이 돌아온다"는 대사를 너무 많이 한다. GV에서는 감독님이 설명적일 수 있는 부분들을 다 덜어냈다고 했는데 영화는 엄청 설명적이다. 으잉?
2
신파적이다. 역시 감독님은 신파적인 영화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셨지만 영화를 볼 때는 신파적이라고 느꼈다. 등장인물들이 엉엉 울면서 그간의 묵은 감정들을 털어내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 보면서 나는 좀 짜증이 났다. 전혀 감정이입이 안 됐다.
그런데 관객들 중에는 이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는 이들도 있었다. 어찌됐든 누군가의 감정을 저렇게나 움직일 수 있었다는 건 그래도 인정할 만한 가치는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영화가 다루고 있는 가족에 관한 감정들을 아직 내가 느껴보지 않아서 무감각하게 반응하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역시 보편적인 정서를 건드리지 못하는 영화의 탓으로 돌릴 수도 있겠다. 그런데 꼭 영화가 보편적인 정서를 건드려야 하나? 그건 또 아니다. "이 영화가 보편적인 정서를 건드리진 못 했다"라는 건 굳이 말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냥 이렇게 말해야겠다. "이 영화는 내 정서와 맞지 않았다." 얼마나 깔끔한가. 아무튼 신파였다.
3
감독님은 편집과 사운드에 신경을 쓰셨다고 한다. 편집 방식이 특이함은 느꼈는데 그것이 이 영화의 예술적 가치를 드높여준 것 같지는 않다. 그냥 영화 자체가 별로 마음에 안 드니 편집 방식 또한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내가 약간 확신에 찬 채로 말할 수 있는 건, 결국에 영화는 내용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내용이 마음에 안 드니 영화의 나머지 좋은 부분들도 마음에 안 든다.
4
영화만 보고 나갔으면 뭐야 이거 하고 바로 잊어버릴 영화였겠지만, 감독 GV가 있어서 생각을 좀 더 할 수 있었다. 감독님은 돈 놓고 돈 먹기 식이 되어버린 대기업 영화 사업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며 GV를 시작했다. 그 안에서 자기 나름대로 예술적인 작품을 만들어보려고 한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의 느낌은 옛날의 기억도 나지 않는 멜로 영화 같았다. 심하게 말하자면 이전의 영화들에 비해 새로운 것이 없는 작품이다. 감독님의 고민은 어디를 향했길래 이 영화가 나왔을까?
그리고 이 영화에서 관객이 발견하지 못 했을 요소들을 몇가지 언급하셨다. 신기하긴 했지만 전달 방식이 미흡했던 것 같다. 나는 의미부여보다는 직관으로 승부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그러고보니 영화에 대해서 말을 할 때 "영화는 어때야 하는가" 식으로 말하기보다는 "나는 이건 안 맞다"는 식으로 말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이론가보다는 아예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건가?)
5
감독님께 하고 싶지만 무례한 것 같아 하지 못한 질문이 있다. 이 영화가 결국엔 홍보도 잘 안 되고 관객 수도 얼마 안 들 것 같은데, 제작비와 손익분기점이 궁금했다. 그리고 제작비를 회수해야 할 책임이 주어진 이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었다.
나는 많은 관객을 만나면서 내 고집을 좀 굽히는 상업영화를 만드는 길과, 적은 관객을 만나더라도 내 뚝심을 지켜낸 예술영화를 만드는 길 둘 중에서 선택을 하라면 전자인 사람이다. 하지만 나 역시 아직 이 결정에 대해 고민이 많이 든다. 그래서 적은 관객을 만날 걸 알더라도 뚝심 있게 이 영화를 만들어낸 허철 감독의 생각이 궁금했다.
6
영화에서 가장 실망스러웠던 건, 막걸리가 잘 안 나온다는 것이다.
영화 초반에는 막걸리의 모습이 아예 안 나온다.
그냥 막걸리가 든 주전자와 막걸리 잔만 나오고, 하얀 자태는 안 나왔다.
그 맛에 대한 대사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막걸스>라는 이상한 영화도 있는데 막걸리 소재로 그런 영화라도 봐야 되나?
2017년 11월 30일 목요일
<화양연화> 교내 소규모 영화감상실에서 잠을 이겨내며
약속이 있어서 일찍 간 학교에서 <화양연화>를 상영했다.
학교에 있는 작은 영화감상실에서 하루에 두 번씩 영화를 틀어준다.
이번달 초에 <화양연화>를 보러 가고 싶었는데 못 가서 반가운 마음에 보러 갔다.
감상실엔 2인용 소파가 3개씩 3열로 놓여있고, 나는 맨 뒤 가운데에 앉았다.
감상 신청자는 5명이었는데 내 앞에 한 남자만이 들어오고 영화는 시작되었다.
왕가위 영화답게 누가 누구인지, 지금 하는 말의 주제가 무엇인지 잘 이해가 안 갔다.
그러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집에서 봤더라면 끊고 침대로 갔겠지만, 밖에서는 웬만한 똥작이 아니라면 꾸역꾸역 본다.
자다 일어나면 보통의 영화는 다 이해가 안 가서 재미가 없는데, <화양연화>는 내가 한 1분만 졸았나 싶을 정도로 이해가 안 가는 부분들이 없었다.
오히려 잠들기 전보다 정신이 선명해져서 그런지 이해가 안 가는 장면들이 없었다.
영화는 한편으로 웃겼다.
사람이 움직이는 장면에 슬로우가 걸리면 어김없이 노래가 깔린다.
계속 똑같은 노래가 시도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게 웃기다.
<화양연화>의 마지막은 제목이기도 한 화양연화를 가슴 속에 묻으며 끝이 난다.
사랑이 지나간 뒤 그리움에 그들이 과거에 살던 집을 찾아간 마무리가 매우 좋았다.
영화 마지막에 끝날 때 자막이 나오는 것도 정말 좋다.
나는 나중에 영화를 만들면 꼭 마지막에 영화 끝날 때는 자막을 넣고 싶다.
예전에 제대로 못 본 것 같아서 두번째 보았는데, 이번에도 제대로 못 봤다.
영화가 별로다 싶었으면 앞으로 안 볼텐데, 영화가 괜찮아도 또 볼지도 모른다.
이번에 가장 눈에 띄었던 건 이들이 걸어다니는 건물이다.
실제로 있는 곳일까?
벽에 알아볼 수 없는 그림들이 수없이 붙어있다.
어떻게 저런 장소를 헌팅했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네이키드 런치> 영화가 마약중독자의 시선으로 그려진다면?
하드 용량이 부족해 영화 파일을 지울 때면 항상 딜레마에 빠진다.
이 영화를 안 볼 것 같아서 지우면 나중에 갑자기 그 영화가 보고싶어져서 다시 다운을 받게 된다.
그렇게 다운을 받고 나선 정작 영화를 안 본다.
원할 때 보고싶은 영화를 바로 볼 수 있게 미리 영화를 다운받아 놓지만, 어째선지 정작 파일 목록을 볼 때는 끌리는 영화가 없고 거기서 지워버린 영화가 뒤늦게 보고싶어지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매번 놓이는 것이다.
지울까 고민되는 영화는 영상을 틀어서 대충 몇몇 장면을 훑어본다.
<네이키드 런치>는 지워버리긴 했지만 그 때 보았던 특이한 장면이 기억에 남아서 휴지통에 남아있던 파일을 복원시켜서 겨우 보았다.
문제의 장면은 타이프라이터가 <비디오드롬>의 살아 움직이는 TV처럼 부드럽게 숨쉬다가 남근을 발기시키고 침대 위에 엉켜있는 남녀에게 올라타 엉덩이를 들썩대는 장면이다.
타이프라이터의 남근이 꽤나 에로틱했고 거기에 깔린 정신없는 재즈음악도 좋았다.
나중에 가면 이 장면을 잊어버릴 것 같아서 한 번 잠들었음에도 시간내어 영화를 보았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마약에 취한 빌이 헛것을 보며 겪는 기이한 일들로 이루어진다.
밑도끝도 없이 커다랑 풍뎅이가 나타나 아내를 죽이라고 명령하질 않나
카페에서는 지인이 갑자기 외계인을 소개시켜주기도 하고
어떤 아저씨는 입술 모양과는 다른 말을 텔레파시로 하기도 한다.
이런 일들을 받아들이는 빌의 표정이 정말 약에 취해 판단력을 잃어 현실과 상상 사이에서 속으로 머뭇거리는 느낌이라 정말 좋았다.
데이빗 크로넨버그는 정말 영화에 맞는 배우를 잘 캐스팅하는 것 같다.
영화가 재미없어진 건 뒷부분으로 가면서 영화가 이해되려고 하면서부터이다.
툭툭 터져나오는 괴기스러운 장면들에서 웃음을 터뜨리는 재미로 보고 있었는데
빌이 어떤 이해할 수 없는 목적을 위해서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는 것이 몰입이 되지 않았다.
초반부의 에너지만은 실로 엄청났다..
원작 책도 한 번 읽어보고 싶을 정도이다.
이것으로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영화에 더 많은 관심이 생겼다.
다음으로는 <엑시스텐즈>를 볼 것 같다.
<라쇼몽> 소설 [덤불 속]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보았지만
대학 수업시간에 재밌는 과제를 내 주었다.
[덤불 속]이라는 소설을 읽고 '범인'이 누구인지 논리적으로 밝혀오는 것.
마치 형사가 된 것처럼 소설 속 여러 인물의 증언을 읽으며 꽤 시간을 들였다.
그러다 과정이 잘 안 풀려서 편법으로 영화 <라쇼몽>을 보았다.
확실히 활자로만 읽다가 이미지가 더해지니 이해가 더 잘 갔다.
그러나 영화 <라쇼몽>은 소설 외부의 상상력을 끌어들여 자의적으로 결말을 덧붙였다.
영화는 왜 이러나 싶을 정도로 뜬금없이 희망적으로 끝이 난다.
흥미롭긴 하지만 소설 속의 단서들로만 범인을 찾는 것이 목적이었던 나는 영화의 이미지에서만 영감을 얻고 혼자서 나름의 결론을 지었다.
내가 보기에는 나의 추리가 완벽했지만, 범인을 다른 쪽으로 지목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서 놀랐다.
이 과제를 가지고 함께 이야기할 시간이 더 많았으면 좋았겠지만, 같은 범인을 지목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각자의 단서를 합친 뒤 발표하는 것이 전부였다.
다른 사람의 추리를 반박하며 내 주장을 어필하고 싶었지만 발표를 할 때는 어째서인지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점수가 배당된 과제보다 더 열심히 해 갔는데, 원했던 만큼의 대화 시간이 주어지지 않아 무척 아쉬웠다.
라벨:
구로사와 아키라,
덤불 속,
라쇼몽,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원작 소설
<비밀은 없다> 무엇때문에 독특했나, 다시 한 번 보고 싶다.
JTBC [전체관람가]를 보다 이경미라는 감독을 알게 되었다.
<비밀은 없다>의 예고편을 살짝 삽입해 주었는데, 필이 딱 꽂혔다.
숲 속에서 카메라가 낮은 높이에서 어딘가로 향해 가는 영상에 무키무키만만수 느낌의 노래가 깔렸다.
그 전에 누군가 <비밀은 없다> VR 상영이 무섭더라 하는 얘기를 한 것도 기억이 나서
내친 김에 영화를 직접 보았다.
정말 매력적인 영화였다.
OST가 마음에 들어서 며칠씩이나 들었다.
감독 인터뷰도 일부러 많이 찾아보았다.
영화 자체가 찝어서 말하기는 어려운데 기존 스릴러 영화들과 많이 다르다.
아무것도 모르고 봐서 더욱 놀라웠다.
시작은 선거를 앞둔 정치인의 딸이 실종이다.
이야기는 파고들수록 시시각각 변하는데, 그 변화가 전혀 말이 안 되는 변화가 아니라 좋았다. 알고보면 다 영화 내부에 단서가 있는 식이다.
'와 어떻게 내용이 이렇게 되지?' 싶은 충격적인 장면들이 태연하게 찍혀서 더 놀랍다.
이제는 영화가 숨기고 있던 비밀을 알았으니 다음에 볼 때는 좀 더 분석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좀 아리까리한 것은 마지막 구타 장면의 정서이다.
속시원해해야 할지.. 코미디로 웃어줘야 할지.. 허탈해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불쾌해해야 할지..
복합적인 정서가 느껴졌는데, 이 장면이 마음에 안 들어서 아쉽다.
영화를 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리뷰를 쓰기도 전에 김주혁씨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감흥이 가시기도 전에 접한 소식이라 너무 슬프고 안타까웠다.
그의 영화들을 몇편 더 돌려보고 싶다.
2017년 11월 27일 월요일
< 1408> 어린 딸을 잃은 아버지라는 설정으로 쥐어짜기
무서운 공포영화가 보고싶었다.
아무 것도 조사하지 말고 그냥 보라고 누가 말해줬던 <1408>을 보았다.
기대 이하였다.
무서운 느낌은 있었지만 영화가 너무 발랄했다.
조용하고 어두운 곳에서 무서움이 엄습하는 영화가 아니라
의외로 주인공이 묵는 1408호가 판타스틱하게 변화하는 화려한 영화였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밀실 배경 영화가 아니었다.
밀실 배경 영화를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인 것 같다.
사람이 많으면 대사로 승부를 보고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든 배경에 변화를 주고.
가장 마음에 안 들었던 건 억지로 감동을 쥐어짜려는 힘겨운 노력이다.
주인공의 심리적 약점이 필요한 영화였는데, 그 약점으로 주인공이 딸을 잃은 아버지라는 설정을 넣었다.
똑같은 설정이라도 잘 표현하면 괜찮았을 텐데, 이 영화는 너무 기계적이었다.
쥐어짜기. 이 표현으로 이 영화를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에너미> 해석 글을 찾아보게 만드는 영화는..
내가 이 영화를 왜 보고싶어했더라?
꽤 오래 전부터 보고싶어했다.
이 영화를 처음 알게 된 건 충격적인 결말의 영화 순위 글 때문이다.
방 안에 커다란 거미가 붙어있는 결말이 충격적이라는 얘기를 보고 난 좀 궁금해졌다.
이 영화를 선택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던 건 내가 제이크 질렌할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드니 빌뇌브가 꽤 유명한 감독이기 때문이다.
유독 요즘 이 영화가 보고 싶었던 이유는... 잘 모르겠다.
말로 하면 뻔한 것 같지만 영화로 보면 흥미로운 전개가 이어진다.
초반에는 영상과 사운드를 의도적으로 불일치시키는 연출이 있었는데 후반부에도 그랬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굉장히 몰입감 있는 스릴러였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가 꽤 당혹스러웠다.
도플갱어가 주인공의 아내와 섹스하려고 주인공을 협박하는데, 납득이 잘 가지 않았다.
영화에서 그리 나쁜 놈으로 표현되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 좀 더 생각해 보면 아 그럴 만도 했겠다 싶긴 하다.
그래도 연출 잘 하면서 이런 부분도 좀 더 자연스럽게 만들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정말로 당혹스러웠던 것은 앞서 언급한 결말이다.
이게 대체 뭐지? 싶으면서 이해가 안 가는 결말이었다.
엔딩크레딧이 다 끝날 때까지 혼자서 꾸역꾸역 이해를 해 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불가능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써 놓은 해석 글을 찾아 보았다.
사실 도플갱어 둘 중 하나는 가상의 존재였고, 거미는 욕망의 은유이다..
나는 그 글을 읽고 나서 이 영화에 정이 확 떨어졌다.
좋지 못한 반전이다.
그동안 당연하게 보아왔던 것이 송두리째 부정당한다.
밝혀진 반전을 아래에 깔고 영화를 다시 한 번 보면 이해가 안 갈 내용은 아니겠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내가 얻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극 자체가 가지는 특별한 의미도 없다고 본다.
그래서 얘는 상상 속의 존재이며.. 이건 뭘 상징하고.. 결국엔 이러저러한 이야기다..?
관객에게 직접 말을 못 하는 시나리오는 하나도 재미가 없다.
이런 시나리오를 가지고 영화를 찍은 게 드니 빌뇌브의 실수였으면 좋겠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황사가 낀 것처럼 영화 내내 누런 모습을 보여주는 황색 도시이다.
혹자는 이 영화의 주인공을 이들이 사는 '도시'라고도 하던데, 공감이 간다.
<해피 투게더> 8월 영자원에서 의문의 버전으로
8월에 시네마테크 KOFA에서 재감상했다.
화면의 질감이 너무나도 좋았다.
필름상영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이게 필름상영이었다면 사람들이 그토록 필름을 부르짖는 이유를 알겠다.
부스스하고 선명하지 않았다.
끝나고 나가면서 주위의 누군가가 "몇몇 장면들이 잘렸다"고 한 말을 들었다.
정말 생각해 보니 오프닝 부분의 충격적인 베드신이 없었다.
그리고 장면들마다 필터를 씌웠는지 색도 달랐던 것 같다.
어떤 버전으로 상영을 한 건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래서 나중에 <해피 투게더>를 또 볼 때면 이 날만큼의 감흥은 없을지도 모른다.
자세한 건 잘 기억이 안 난다.
이 영화를 처음 보고 동아리에 가서 얘기를 할 때도 이 사람들이 무슨 얘기를 하나 싶을 정도로 기억이 잘 안 났다.
지금까지 내가 본 왕가위의 모든 영화들은 다 휘발성이 강하다.
볼 때는 느낌이 있지만 그 느낌이 내 머리로는 기억으로 잘 안 남는 것 같다.
8월에 극장을 찾았을 때 드디어 <해피 투게더>를 온전히 느낀 것 같았다.
이후로 나는 OST를 찾아서 많이 들었다.
2017년 11월 10일 금요일
<아내는 고백한다> 아내는 고의로 남편을 죽였나? 법정 스릴러
영자원 영상도서관에서 감상.
원래 보려는 영화가 있었는데 한글자막이 없어서 못 보고 차선으로 선택했다.
전혀 정보가 없는 감독이었는데 아는 형의 추천으로 알게 되었다.
1961년 흑백영화라니.
너무 지루할 것 같아서 안 보려고 했으나 막상 영화를 보니 정말 재미있었다.
내용은 법정스릴러이다.
로프에서 남편의 줄을 끊어버린 여인과, 그 여인이 사모하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이야기 자체가 매우 흥미진진했다.
연출 스타일도 그리 옛 영화를 보는 느낌이 아니어서 좋았다.
<베이비 드라이버> 정작 자동차 액션은..
에드가 라이트라는 감독의 영화를 처음 보게 되었다.
동아리에서 이 영화를 가지고 얘기가 나와서 홧김에 여럿이 보러 갔다.
왕십리까지 가느라 지각을 해버렸다.
다행히도 내가 놓친 부분은 네이버에도 풀려있는 장면이라 아예 놓친 부분은 없었다.
영화는 내가 기대한 정도로 재밌지는 않았다.
병맛 액션이라는 수식어는 전혀 어울리지 않고
음악에 액션이 타이밍 딱딱 맞게 어우러지는 정도이다.
문제는 제목이 '베이비 드라이버'인 만큼 자동차 액션을 기대했는데 실제로는 자동차 액션이 거의 없고, 그나마 있는 장면도 그리 잘 찍진 못 했다는 것이다.
자동차 액션 쪽에 신경을 더 썼으면 좋았을 것 같다.
자동차 액션보다 총질하는 장면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에드라 라이트라는 감독에 대한 기대치가 싹 줄었다.
그냥 차라리 분노의 질주 시리즈를 하나 다운받아서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밤샘영화제 <가족의 탄생> 가족과 가족이 이어지는 순간을 담아내다
내가 이 영화를 예전에 본 적이 있다.
나는 이 영화를 남들은 다 좋다는데 재미없는 영화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굳이 다시 볼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이왕 밤샘영화제에서 보게 된 거, 예전에 봤을 때보다 좀 더 재밌게 봤으면 싶었다.
그렇게 보게 된 <가족의 탄생>이 이번 밤샘영화제에서 본 다섯 편의 영화 중 제일 괜찮았다.
어릴 때의 내가 이 영화를 몰라봤던 건 아마도 영화를 이해할 만큼의 경험이 없어서일 것이다.
영화 색깔이 좀 독특하다. 어떤 장르 안에도 딱 들어맞지 않는 느낌이다.
코미디인 것 같으면서도 웃기려 만든 영화는 아니다.
드라마 장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옛날의 나는 이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 감이 잘 안 왔을 것 같다.
좋았던 것은 영화의 섬세함이다.
예전에는 내가 둔해서 잘 캐치하지 못 했겠지만, 문소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편의상) 1부에서는 문소리의 감정이 다 느껴졌다.
꼭 대사로 "짜증난다", "어이가 없다" 이런 말을 안 해도 감정은 다 전해진다.
오히려 그런 대사를 안 쓰고 어이없는 상황과 짜증이 난 표정을 보여주는 것이 더 감정을 잘 전달한다.
눈치 없는 엄태웅과 그걸 다 받아주느라 지친 문소리를 보면서 1부에 깊이 빠져들었다.
2부는 날카로운 성격의 공효진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여기서 하는 얘기는 너무 뻔해서 별로였다.
주변 신경 안 쓰고 자기 감정만 내세우던 사람이 뒤늦게 어머니의 유품을 보며 눈물을 터뜨린다..
3부는 오프닝에 나왔던 정유미와 봉태규의 이야기를 보여주다가 이제껏 보아오던 이야기들을 하나로 연결한다.
이 연결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정유미가 1부에 나왔던 여자아이였다는 사실이 반전인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며 기차 역에서 배우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가는 장면도 중요하다.
일단 크레딧 장면부터 보자.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이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어딘가로 향한다.
이들이 가족으로 묶이지 않아 서로가 서로를 몰라볼 때의 장면인가 싶었는데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랐을 캐릭터들이 서로를 못 알아보기도 하고
한 사람을 연기한 어린 배우와 젊은 배우가 마주치기도 한다.
이게 대체 무슨 뜻인가 싶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며 그 의미를 찾았다.
영화는 그동안 보여준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영화 속의 이야기를 겪어보지 않은 나에게는, 그 장면이 특이하게 보이는 이야기를 일반화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정유미가 맡은 캐릭터의 반전은 그동안 서로 몰랐던 사람들이 가족으로 묶일 때의 놀라움을 잘 보여준다.
엔딩 크레딧 장면과 함께 본다면,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 그 누구도 나의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것처럼 보인다.
전혀 관련 없어 보였던 1부의 가족과 2부의 가족도 서로 이어질 수 있는 것처럼!
<남자사용설명서> 유난히 긴 두 숏에서 현장의 에너지를 상상했다
요즘 JTBC에서 하는 [전체관람가]라는 프로그램을 챙겨보고 있다.
거기서 관심있는 감독이 생겨 지난번에는 <비밀은 없다>를 보았고
이번에는 <남자사용설명서>를 보았다.
<남자사용설명서>는 이원석 감독의 영화이다.
[전체관람가]에서는 김보성과 이동준 배우를 캐스팅해 그들이 아니면 들려줄 수 없는 특이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냈다. 그 이름은 <랄라랜드>.
랄라랜드가 계속 머릿속에 맴돌아서 이원석 감독이 어떤 영화를 만드는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남자사용설명서는 능력있지만 높은 자리에 올라가지 못 하는 여자주인공이 의문의 '남자사용설명서' 비디오를 손에 넣고 나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남자인 입장에서 남자가 물건으로 다뤄지는 것이 유머라고 해도 보기 썩 편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남자사용설명서>라는 영화를 대표할 수 있을 만한 두 장면을 눈여겨 보았다.
둘 다 오정세 배우의 연기를 꽤 긴 길이의 숏으로 담아낸 장면이다.
하나는 오정세가 다짜고짜 이시영에게 키스하려고 하는 매우 긴 장면이고
하나는 오정세가 이시영이 바람이 났다고 착각하고 "잤지?"를 연거푸 물어보는 장면이다.
이 두 장면이 제일 재밌고 특이했다.
영화 진행에 있어서 짧게 자르고 넘어갈 수 있는 장면이었을텐데
오정세 배우가 너무 연기를 웃기게 잘 해서인지 일부러 길게 넣은 것 같다.
<랄라랜드> 메이킹 영상을 보니 이원석 감독은 현장 분위기가 되게 좋았다.
<남자사용설명서>의 이 두 장면도 매우 즐거운 분위기에서 촬영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의 즐거운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다.
2017년 11월 5일 일요일
밤샘영화제 <매기스 플랜> 세상살이 쉬운 일 하나도 없구나
밤샘영화제 두 번째 영화.
기분이 좋아지는 영화라서 골랐다는 말에 로맨틱한 영화일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다.
조금 나이든 사람들의 결혼과 육아, 불륜을 소재로 삼았다.
그 친구는 영화 자체의 톤이 부드럽고 귀여워서 이 영화를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이 영화는 각본을 잘 써서 그런지 스토리텔링을 참 잘 한다.
뻔하지 않게 적당히 재미있게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하지만 영화를 돌이켜보면 나는 비슷한 영화로는 우디 앨런의 코미디 쪽이 더 좋았던 것 같다.
이렇다 할 특징을 찾을 수가 없는 <매기스 플랜>이 내 취향에는 맞지 않았다.
좋았던 씬은
그레타 거윅이 피클맨으로부터 기증받은 정자를 자궁에 주입하고
좋아하고 있는 에단 호크가 찾아와서 방과 몸을 깨끗이 하고 그를 맞이한 다음에
에단 호크가 그녀를 사랑한다며 고백하고 섹스를 하는 장면
처음 느껴본 감성이었다.
그 장면에서 흘러나온 노래때문인지 조금 슬픈 기분이었다.
하는 행동에서 인물들의 나이들었음이 느껴져서였던 것 같다.
나이들었음이 왜 슬픈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나이듦을 원치 않아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물론 이 장면은 사랑스러운 장면이었다.
결말 부분은 해피 엔딩을 암시하지만
매기의 아이의 아빠로 추정되는 피클맨이 어떤 남자일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나는 매기가 앞으로도 지난 일과 비슷한 사건들을 겪으며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도 힘들었고 앞으로도 또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좀 슬펐다.
물론 딱히 슬픈 영화는 아니다.
밤샘영화제 <싱 스트리트> 왜 더 크려고 하지 않는가?
과에서 진행한 밤샘영화제 다섯 편의 영화 중 첫 영화.
가장 기대하는 영화 한 편이었다.
개봉 당시 극장에 굳이 가서 볼 만한 영화는 아니라 시큰둥했지만
친구가 이 영화를 선정한 이유가 궁금하고, 가벼워서 다 같이 모여서 보기도 좋을 것 같았다.
영화는 밑도 끝도 없이 내용을 전개해나간다.
어린 아이들의 이야기를 한다는 점에서 내용과 형식이 어느정도 맞아떨어졌다.
저 애들이 보여줄 수 있는 귀여움과 뜬금없는 전개가 합쳐져 유머를 만들어냈다.
길에서 본 여자가 마음에 들어서 갑자기 밴드를 만들기로 한다든지
뭔가 있어보여서 이름도 모르는 흑인 애를 밴드 멤버로 섭외한다든지.
좀 더 서론이 길어야 되는 거 아니야? 벌써 본론으로 들어가는 건가?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이건 장편 영화를 세 번째 만드는 존 카니의 패기였다.
나는 지금까지 주구장창 데모CD 만드는 음악영화만 찍어온 사람이다
당연히 이번에도 그런 영화 찍을 거고, 이런 영화에서 안 중요한 것과 중요한 것은 이제 알아!
밴드의 리더는 노래도 잘 못 하고 악기도 못 다루지만 금세 엄청 좋은 노래 한 곡이 뽑힌다.
프로듀서는 이거 뭐 제대로 할 수 있으려나 싶더니 복고 감성이 풀풀 풍기는 멋진 뮤직비디오 한 편을 찍어버린다.
밑도 끝도 없다는 거 누구나 다 알지만 그냥 넘어갔다.
존 카니는 이 영화에서 밴드의 시행착오..를 보여주려는 게 아니다.
통통 튀는 음악 몇 곡, 옛날에 멋졌던 블링블링한 의상들, 그리고 연애 이야기.. 뭐 이런 것들을 영화로 찍으려는 것이다.
그런데 내용 전개의 중심을 차지하는 연애 이야기가 너무 재미가 없다.
그냥 음악에만 몰빵해서 2시간짜리 뮤직비디오를 만들지 그랬나 싶었다.
남자애 여자애가 자기 가족 얘기를 꺼내면서.. 기쁜 슬픔인가 뭔가 얕은 수작 부리는 대사를 늘어놓고.. 영화는 너무 노잼이 되어버린다.
여기서부턴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보여질지 훤해서 지루하게 볼 수밖에 없었다.
우선 영화의 좋았던 점들을 짚고 가자면
1. Drive it like you stole it이 깔리는 환상 장면
뮤지컬 영화처럼 등장인물들이 한데 모여 춤사위를 벌인다. 이게 뮤직비디오 촬영현장에 여주인공이 오지 않는 상황에서 남주인공이 그리는 상상이기 때문에 특이한 슬픔을 자아낸다. 정말 그저 그렇게 뻔히 흘러가는 영화에서 딱 하나 건질 수 있는 장면이었다. 시각적으로도 매우 즐겁다.
2. 암울한 동네에서 벗어나는 이야기
내가 좋아하는 <트레인스포팅>을 떠올렸다. 영화는 끊임없이 이 동네가 시궁창 동네임을 보여준다. 주인공의 형이 더 이상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않고 집을 못 나서는 게 좀 슬펐다. 내가 암울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 하기 때문에 이런 테마 자체는 마음에 들었다.
3. 악역 캐릭터에게 관용을 베풀기
나는 주인공을 위협하는 일진 캐릭터가 언제쯤 주인공을 방해하는 최후의 관문으로 등장할지 기대했는데 영화는 주인공이 그에게 관용을 베푸는 식으로 악역 캐릭터를 멋지게 활용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가는 것보다 훨씬 영리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저런 사람도 자기 역할이 제대로 주어지면 잘 살아갈 수 있구나 하는 희망도 느꼈다.
영화 전체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존 카니에 대한 이야기이다.
존 카니는 <원스>에서 하던 걸 음악과 내용 면에서 메인스트림화한 <비긴 어게인>으로 대성공을 이뤘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서 <비긴 어게인>에서 <싱 스트리트>로 가면서 나아진 것이 하나도 없다.
주인공을 어린애들로 바꾸었다. 그거 말곤 진짜 새로운 것이 없다.
오히려 연애 스토리는 확실히 구려졌다.
기존에 먹혔으니 똑같은 걸로 안전빵 영화를 만드는지, 아니면 존 카니가 실제로 이딴 영화 만드는 걸 좋아하는지 잘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영화 만들면 앞으로는 이 사람 영화 보고싶지 않다.
내용이 지루함의 끝을 달렸다.
소년 소녀의 꿈.. 좌절.. 그리고 희망..! 이런 얘기를 될 수 있는 가장 지루한 방식으로 대충 만들었다고 보면 된다.
음악은 충분히 잘 만드니 스토리를 보충하든지, 아니면 음악에 몰빵하든지 하면 좋을 것 같다.
2017년 10월 27일 금요일
<소름> 차원이 다른 공포영화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너무 보고싶었다.
방 안에만 있는 시간이 매우 늘어나면서 아파트라는 공간이 특별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파트를 무대로 한 공포게임을 가장 하고 싶었으나 구할 수가 없어 하지 못 했다.
대신 다 무너져가는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 <소름>을 보았다.
<소름>은 일반 공포영화들과 차원이 다른 서정적인 공포영화이다.
깜짝 놀라는 장면이 없다. 공포영화니 억지로 끼워넣은 장면이 하나 있긴 한데 흐릿하게 보여 걱정할 것이 없다. 사람들을 놀래키는 장면 대신 이 영화는 인물들이 순간순간 느끼는 감정을 포착해내며 관객과 가까워지기를 택한다. 이로 인해 관객은 인물에 동화되어 작은 공포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그리고 귀신이라는 존재가 인물들의 입에 끊임없이 오르내리지만 결코 사람들의 눈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사실 나는 귀신 이야기에 어둠 속에서 두려움에 떨어본 적은 있지만 실제로 귀신을 마주한 적은 없기 때문에 이런 공포가 더 익숙하고 마음에 든다. <소름>은 이런 식으로 실제로 사람들이 누구나 느껴본 적 있을 마음 속 어딘가의 공포를 건드린다.
또 배경인 아파트의 생김새가 너무 강렬하다. 우리나라에 아파트가 처음 지어지기 시작하던 때에 만들어져서인지 복도 양 옆에 집들이 붙어있고 맨 끝이 뻥 뚫려있는데 빛은 안 들어온다. 그래서 낮에 인물을 찍으면 복도는 어둡고 뒤편에는 햇빛이 보이는 특이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아파트 벽에는 때가 줄줄 흐르고, 전단지와 테이프,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집 내부 또한 벽지가 오래되고 창이 낡은 종이로 되어 있다. 화장실엔 타일 하나도 붙어있지 않다. 게다가 아파트 벽이 얇아서인지 빗소리, 사람들이 싸우는 소리, 밤에 술취한 이웃이 우는 소리, 남녀가 섹스하는 소리까지 다 귀에 들어온다.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있을 만한 공간이 아닌 것 같은 이 곳이 영화의 진정한 주역이라 말하고 싶다. 로케이션이 영화의 절반 이상을 해냈다!
김명민, 장진영 두 배우 또한 광적인 연기력을 보여준다. 말로 설명하는 것이 필요없을 정도로 이 둘은 각자의 배역에 깊이 몰입해 충격적인 장면들을 만들어냈다. 바로 주인공 한 명이 상대방과 언쟁이 격해지다 결국 죽이게 되는 롱테이크 씬이다. 멀쩡히 소리내어 말하고 움직이던 사람이 그대로 죽음에 처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처참한 장면이다.
단 하나 따라가기 어려운 지점은 아파트에 얽힌 괴담의 실체이다. 인물관계를 억지로 조성한 것 같으면서도 말이 조금은 되고.. 이러한 설정이 있었기에 의미를 가지는 장면들도 있는데.. 공포스럽기보다는 그저 하나의 반전요소에 지나지 않는 느낌이다.
하지만 간만에 수작 공포영화를 만났다. 그것도 국산 공포영화를.
공포영화답지 않게 느릿느릿하게 흘러가던 이 영화에서 느낀 공포를 나는 다른 영화들에서도 만나보고 싶다.
호러영화가 곧 깜짝 놀래키는 영상으로 굳어져버리는 게 너무 안타까울 따름이다.
<사돈의 팔촌> 이런 로맨스, 이런 감정..
<커피 느와르: 블랙 브라운>이라는 영화를 안 좋게 봐서 장현상 감독에 대한 기대치가 팍 죽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네버다이 버터플라이>는 정말 잘 만든 영화같아서 그 에너지를 기대하고 <사돈의 팔촌>을 보았다.
매우 마음에 들었다.
조마조마한 사랑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게 정말 좋았다.
두 남녀는 사촌관계이다.
이들은 어린시절 둘 사이의 매우 특별한 감정을 느끼고 친척들끼리의 문제가 생겨 오랫동안 못 보다가 다시 만나게 되었다.
두 사람의 마음은 흔들린다. 그러나 이내 서로가 원하는 쪽으로 흘러가게 된다.
진짜 로맨틱한 영화였다.
굳이 유명한 배우나 예쁜 로케 없이도 로맨스는 탄생할 수 있구나 싶었다.
흐름도 자연스러워서 영화가 사촌끼리 연애를 한다는 매우 특이한 설정에 먹혀버리지 않고 감정만으로 관객들을 설득할 수 있을 정도이다.
"어른이 돼서 뭘 경험하고 어떤 감정을 느껴봤자 아이때 느꼈던 감정만큼 크진 않대."
특이한 것은 남자 아역이 뚱뚱한 아이라는 점.
아쉬운 것은 사촌관계 설정 자체가 극의 긴장감을 높여주지만 그다지 중요한 의미는 없다는 점.
그래도 정말 잘 만든 영화였다.
이후 영화들도 꾸준히 잘 만들어주셨으면 한다.
2017년 10월 15일 일요일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 김정일.. 만세..?
"화려했던 무대와 어두웠던 관객석, 초라했던 나는 메탈티를 입었네~"
친한 형의 추천으로 보게 된 영화.
정식개봉은 안 할 줄 알고 일부러 서울아트시네마까지 찾아가서 보았다.
알고보니 <논픽션 다이어리>를 만들었던 정윤석 감독의 작품이었다.
이전 작품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지만,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기묘하고 충격적인 사건을 다룬다는 점에서는 비슷했다.
이 영화는 밤섬해적단이라는 밴드에 대한 다큐멘터리이다.
후반부에 일어난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이 극적인 요소를 더해서 더 좋았다.
다큐멘터리를 찍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쉽게 오지 않는.. 신이 내려준 기회이다..
뭐 그 사건이 없었더라도 충분히 즐겼을 것 같다.
가장 처음 관객들을 사로잡는 건 뜨겁고 강렬한 사운드, 그리고 거기에 더해지는 타이포그래피 뮤직비디오이다.
곡이 너무 좋아서 [서울불바다] 앨범을 다운받아 계속 듣는 중이다.
다음은 밤섬해적단 드러머 권용만씨 특유의 유머코드.
별로 웃기게 생기지도 않았는데 엄청 재밌다.
재밌는 얘기를 별 것 아닌 것처럼 말해서 더 웃기다.
그리고 북한.. 표현의 자유.. 국가보안법.. 뭐시기..
보면서는 무릎을 탁 쳤지만 영화의 논리가 뭐였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는구려
정윤석씨의 차기작이 기대되며
권용만씨가 진행하는 시네마지옥의 앞날이 기대된다.
너무 좋았던 이 영화를 추천해준 형이 고른 또 하나의 영화는 <로우>이다. 언젠간 볼 것 같다.
2017년 10월 14일 토요일
<벨벳 골드마인> 그런 유행이 있었구나
동아리에서 이 영화를 가지고 모임을 했었다.
영화도 재미없는데 모임에서 나눈 얘기도 정말 재미없었다.
나는 영화 속에 담긴 문화에 대해 락덕후 혹은 발제자가 멋지게 말을 덧붙여주길 바랐는데
동성애에 대한, 다들 조심스러워해서 말문이 막히는 얘기만 하다 왔다.
사실 별로 할 얘기가 없는 영화이기도 하다.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분위기.. 그런 것들이 거의 전부처럼 보인다.
<핑크 플로이드의 The Wall>과 느낌이 비슷했다.
서사가 있긴 하지만 그것이 그리 중요치 않게 취급되고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 락 음악이 깔린다.
그것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발제자에게 조금 실망을 했었다.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 괜한 감정 안 잡는 게 더 좋았을텐데
배두나가 보고싶어서 보았다.
이 영화는 로맨틱 추리 연애담을 표방한다.
여자는 도서관에서 빌린 책에 있는 연애편지를 친구가 자기에게 보낸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녀를 짝사랑하던 친구는 자기가 그 편지를 쓴 사람인 것처럼 위장해 사귀게 된다.
하지만 이내 여자가 진실을 알게 되고, 이로 인해 갈등이 발생한다.
그럼에도 이 둘은 이어진다는~ 이야기~
배두나 하는 짓이랑 영화 분위기 자체가 귀여웠다.
가사 있는 노래가 너무 많이 깔리는 영화는 별로 안 좋아하지만 이 영화는 노래 까는 센스가 좋다.
윤종신이 부른 '환생'이 기가 막히게 들어갔다.
하지만 영화가 이야기를 너무 질질 끈다.
100분도 안 되는 영화가 10개가 넘는 파트로 쪼개져 있는 건 화법의 문제이다.
후반부에 가선 특히나 별 몰입도 안 되고 지루한 우울한 감정들을 늘어놓는다.
배두나의 캐릭터처럼 엉뚱하고 발랄하며 화장기 없는 분위기가 끝까지 이어졌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 같다.
<인히어런트 바이스> 이 감독 나랑 안 맞아...
너무 궁금해서 봤었다.
러닝타임이 2시간 반정도 되는데 체감 4시간은 됐던 것 같다.
뭔 얘기를 하는 건지.. 눈만 뜬 상태였고 영화엔 도무지 빠져들 수가 없었다.
기억나는 게 없고, 다시 보고싶지도 않다.
그냥 이상하다는 느낌만 너무 많이 든다.
씬도 꽤 많고 열심히 찍은 것 같은데, 대체 뭘 찍었는지 모르겠다.
<매그놀리아>를 봤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대체 이 이야기를 왜 하는 거지?
폴 토마스 앤더슨 정말 안 맞는다.
<몬스터> 코미디영화 주인공이 스릴러영화 악당과 싸우는 이야기
6월에 본 영화를 이제서야 리뷰한다.
친한 형이 엄청난 괴작이라며 내게 추천한 영화이다.
당시에 매우 특이하게 보았다.
오래도록 머릿속에 남지 않는 건 좀 아쉽다.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에 전체관람가 영화를 섞어낸 느낌이다.
이민기의 세계는 어둡고 잔인하지만, 주인공인 김고은의 세계는 코미디의 화법을 따르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 둘의 세계를 충돌시키면서 특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민기는 농담 하나 없이 진지하려 하지만, 자꾸 김고은이 거기에 초를 치는 식이다.
어느정도 의도된 잡탕이겠거니 하는 생각이 드니 이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조금은 마음에 든다.
2017년 10월 13일 금요일
<아노말리사> 홍상수를 닮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시네도키, 뉴욕>에 대한 글을 쓰고싶어져서 찰리 카우프먼이 그 이후로 연출한 <아노말리사>를 보았다. 이렇게 그의 연출작은 지금까지 두 작품.
<아노말리사>의 앞부분은 연출 스타일이 매우 독특하다.
영화의 모든 요소가 주인공 마이클과 관객을 기분나쁘게 만든다.
위 스틸컷은 마이클을 묘하게 불편하게 만드는 택시기사 씬이다.
이런 느낌들을 잘 캐치해내 섬세하게 표현한 걸 보면, 찰리 카우프먼이 실제로 우울하고 예민한 사람일 거란 생각이 든다.
인형의 디자인 또한 묘하게 불편하다. 얼굴이 두 눈을 경계로 위 아래로 가면처럼 붙어있다. 그리고 나중에 알고보니 주인공 남녀를 제외한 모두의 얼굴이 같은 얼굴이었다고 한다.
주인공 남녀를 제외하고는 목소리도 모두 남자의 목소리로 들린다.
마이클에게 세상 사람들은 다 같은 얼굴을 하고 매력 없는 목소리를 한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내용은 예상한 것과 전혀 달랐다. 홍상수 애니버전이라고 해도 되겠다.
예민한 성격의 마이클이 강연을 위해 호텔에서 하루를 묵는데, 밤이 외로워서 옛 애인을 불렀다가 퇴짜를 맞기도 하고, 한 여자에게 반해버려 술자리를 한 후에 하룻밤을 같이 보낸다.
이상한 꿈을 꾸고 난 뒤 아침을 먹으며 그 여자와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중인데, 전날의 사랑스러움이 더는 없다. 그래서 마이클은 괴로워한다.
사랑에 빠지는 과정은 그렇게 사랑스럽게 찍어놓고서,
사랑이 식는 과정은 정말 무섭도록 그려낸다.
해결이 되지 않아서 꺼림칙하게 남아있는 것이 좀 있다.
그래서 마이클이 잠깐 동안 벗으려고 했고, 꿈 속에서 떨어트렸던 가면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리고 꿈의 내용은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소비자 전략에 관한 강연을 하러 온 마이클을 보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저 사람 마이클 아냐?" 하고 수근거린다.
이는 자기를 과도하게 의식하는 마이클의 성격을 드러낸 연출이 아니었을까.
아니면 찰리 카우프먼이라는 사람 자체가 자기를 과도하게 의식하는 사람이라, 의도치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들어간 것일까.
사랑이 식어버리는 과정이 내게는 너무 암담했다.
꿈도 희망도 없이 끝이 나 버렸던 <무드 인디고>처럼, 아예 영화의 결말이 이런 식으로 될 거란 걸 미리 알고 봤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사랑을 다룬 영화가 그리 좋지 못한 결말로 끝났을 때의 후유증은 너무나도 크다..
2017년 9월 19일 화요일
<시네도키, 뉴욕> 동아리의 마지막이 될 뻔한 영화
이 영화를 끝으로 동아리 자체를 마무리하려 했었다.
사람이 12명 오고, 5명 오다가 이 영화를 내가 발제할 때 2명이 와버려서
너무 화가 났다.
다행히도 몇달 뒤 다른 분이 나타나서 동아리를 다시 이끌어주셨다.
그분이 없었다면 아마도 동아리는 고인 물로 남아 영영 썩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말하기를, 내 이전 회장 때부터 동아리의 암흑기였고 내가 맡을 때가 더 심한 암흑기였다고 한다.
나는 그냥 암흑기 때 뭣모르고 들어온 사람이고, 새내기라 뭘 잘 할 줄도 모르던 내게 동아리를 맡겨버린 것이 미안하다던 사람들도 있다.
내가 동아리를 그만두기로 결심했던 이유에 대해서 사람들은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
이건 아무래도 내게 이 얘기를 한다는 것 자체를 민감하게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잘못한 게 누가 봐도 명백해서 굳이 이야기를 더 하지 않으려는 건가?
아니면 동아리를 내버려두고 자기 할 일 하던 것이 미안해서일까?
내가 나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못 들으니 제대로 된 이유는 앞으로도 알기 힘들 것 같다.
아무튼 <시네도키, 뉴욕>이라는 영화 주인공의 초라한 결말과 함께 동아리를 끝내려 했다.
내가 동아리에 10분을 늦었는데 아무도 없었다.
내가 잘못 왔나? 사람들한테 공지를 제대로 안 했나? 몇 분 있다가 내가 동아리에 소개한 친구 한 명이 왔다. 그게 전부였다. 좋아하는 후배와의 식사를 접고 온 것이라 기분이 너무 안 좋았다.
동아리는 다시 돌아왔는데, 굳이 안 좋은 얘기 해서 뭐하나.
동아리를 끝내려 했던 그 날을 사람들이 상기시켜주지도 않고 그래서 <시네도키, 뉴욕>은 얼마간 다시 돌아보고싶지 않은 영화였다.
그러다 최근에 동아리 선배의 지목으로 베스트 영화 10편 목록을 만들다가 이 영화가 떠올랐다.
가장 먼저 떠올랐던 영화들에 비해서는 내 취향이 아니지만, 지난 4월에 다시 볼 때 너무 좋게 봤던 기억이 있어 리스트에 넣어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에드 우드>나 <어바웃 타임>같은 영화로 대체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베스트 영화 10편을 본 동아리 사람들 몇몇은 <시네도키, 뉴욕>을 정말 좋아한다고 밝혔다.
그래서 이 영화에 대한 나의 팬심을 밝히고.. 그랬다.
4월에도 동아리에 온 사람이 두 명뿐이라 녹음해서 잡지에 실어보려고 했으나
나만 혼자 말을 너무 많이 해서 차라리 나중에 글로 쓰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가능하다면 지금이라도 <시네도키, 뉴욕>이나 <에드 우드>에 관한 글을 써서 잡지에 실어봐야겠다)
<시네도키, 뉴욕>은 마음에 드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가장 특이하다 느낀 건 시간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 하는 데서 오는 슬픔이다.
기본적으로 영화는 한 씬에서 그 씬의 길이만큼의 시간을 다루는데
이 영화는 많이 달랐다.
한 씬 안에서도 뉴스나 신문, 대사, 유통기한 표시 등을 통해 이상하게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간다.
영화 전체적으로 이러한 이상한 현상들이 주인공도 눈치채지 못 하는 사이에 일어난다.
또 무슨 얘기를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빠른 시일 내에 영화를 한 번 더 보고 글을 써야겠다.
<휴먼 센티피드> 소재가 멱살잡고 끌고간 케이스. 수준 이하의 각본때문에 생각하기도 싫다
고어영화 보기 소모임의 마지막날은 <휴먼 센티피드> 트릴로지로 장식하려 했다.
하지만 1편 자체가 너무 구려서 다음편을 보지 않기로 했다.
사람들의 항문과 입을 연결해서 지네를 만들어버린다는 기괴한 설정으로 뜬 이 영화는
뽑아먹을 것이 그 기괴한 설정 하나밖에 없다.
웬만한 너그러운 장르매니아도 돌아설 캐릭터와 내용, 연출 때문에 기대했던 속편들은 보지 않기로 했다.
진짜로 내가 각본 써도 이것보단 나을 것 같다. 이건 농담이 아니다.
인간지네라는 독특한 소재 때문에 중간만 해도 컬트 명작으로 이름을 날릴 수 있었을텐데..
<마터스: 천국을 보는 눈>, <세르비안 필름>을 보면서 고어영화에 대한 생각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휴먼 센티피드>는 장르적 요소보다 구린 내용이 너무 커서 아무런 생각을 하지 못 하겠다.
세 편의 영화를 가지고 이어서 한 편의 글을 써 보려고 했는데 실패했다.
황급히 남은 두 편의 영화를 <살로 소돔의 120일>로 대체하려고 했지만 인터넷이 너무 느려서 다운받지를 못 했다.
대신 하드에 있던 <스크림>을 보았다. 그저 그랬다.
매우 짜증이 나는 건, 이상하게도 <휴먼 센티피드 2>가 너무 보고싶다는 거다...
나중에 세어보니 <휴먼 센티피드>가 올해 100번째로 본 장편영화였다.
맙소사..
2017년 9월 17일 일요일
<춘몽> 소녀 한 명과 아저씨 세 명
윤종빈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를 내가 좋아한다.
그리고 장률의 <경주>도 좋아한다.
그래서 윤종빈 감독이 출연하는 장률의 <춘몽>을 보게 되었다.
예고편의 훈훈한 분위기와 달리 영화 자체는 좀 서늘하다.
농담스럽게 찍힌 코믹한 장면들이 많지만, 그 의미를 알 수 없이 섬뜩하게 연출된 장면들도 간혹 튀어나온다.
또 옅은 녹색빛의 무채색 영상은 분위기를 영화 내내 축 가라앉혀 놓는다.
영화는 만족스러웠다. 은근한 매력이 있다.
세 명의 남자가 여자 한 명을 둘러싸고 돌아다닌다는 점에서 <우리 선희>도 생각이 난다.
<우리 선희> 쪽에 비하면 여기 남자들이 더 멍청하고 순수하다.
예리와 자고 싶다, 가슴 만지게 해 달라는 식으로 남자들의 욕망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만
그렇게 투명해서인지 오히려 정범과 익준 두 사내에겐 의심이 안 생긴다.
오히려 아무 말 없는 쪽이. 정범이나 <우리 선희>의 남자들이 많은 걸 숨기고 것처럼 보인다.
바보같고 순수한, 실제로 저런 관계가 있기나 할까 싶을 정도로 신기한 관계.
계획된 세상. 모든 것이 통제된 술집. 모든 것이 통제된 단역.
이 영화만의 매력이 있었다.
나중에 <춘몽>을 다시 찾고플 때가 올 것이다.
<다크 나이트> 배트맨, 어둔 밤에게 길을 내 줘..
<다크 나이트>가 재개봉을 해서 동아리 사람들과 함께 보러 갔다.
다크 나이트를 인생 영화로 꼽는 사람들도 많고
다크 나이트가 개봉했을 때 극장에서 봤던 사람들의 경험담도 많이 들어서
재개봉을 했으니 한 번쯤은 보러 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사람들과 함께 갔다.
영화 자체는 괜찮았다.
하지만 내가 좋아할 만한 영화는 아닌 것 같다.
영화를 본지 그렇게 오래 된 건 아니지만 그 때 내가 뭘 느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오히려 <다크 나이트>를 본 뒤 바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본 <어둔 밤>이라는 패러디 영화가 훨씬 내 맘에 든다.
심하게 말하자면, 내게 <다크 나이트>는 <어둔 밤>을 위한 재료 격이었다.
<어둔 밤> 속에 등장한, 팬이 아니고서는 기억하기 어려운 <다크 나이트>의 요소들을 나는 본지 얼마 안 됐기에 알아볼 수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점심을 함께했다.
하지만 영화 얘기는 거의 안 했다.
왕십리까지 가서 <다크 나이트>를 본 것이 약간 허무해졌다.
스크린도 크고 사운드도 빵빵하고 그랬지만 내 안의 무언가를 건드리진 않았다.
앞으로도 굳이 좋은 설비의 극장을 찾아다닐 일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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